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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성명]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성명] 재난은 평등하지 않았다

지난 7일, 성소수자 혐오를 선동해온 국민일보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태원의 성소수자 클럽에 다녀왔다는 점을 강조한 기사를 냈다. 기사에는 확진자의 나이와 거주지, 회사의 업종 및 주소 등 방역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특정 확진자의 시간대별 동선과 나이, 주소 등의 정보를 공개해 그 확진자를 특정할 수 있게 만드는 현 동선공개 시스템과 만나, sns상에서 감염인들의 사생활이 돌아다니는 계기가 되었다.

추가로 발생한 확진자들의 동선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대학의 기숙사는 해당 클럽에 다녀온 이들을 색출하기 시작했고, 성소수자 동아리 방의 문이 닫혔다. 감염병 사태 아래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색출이 진행되는 오늘날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에이즈와 신종플루 등 세계적 감염병의 확산 때마다 성소수자들은 질병에 감염되는 것보다도, 이로부터 발생할 성소수자 색출을 통해 본인의 성정체성이 공개될지도 모른다는 점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이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의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삶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음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은 민관협력의 체계를 이용해 코로나19라는 질병을 통제해왔다. 질병에 대한 낙인과, 그 낙인으로 묶인 감염자에 대한 색출은 한국 방역 성과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민간의 자발적 협력을 막는다. 코로나19라는 만민의 질병에마저 감염인에 대한 낙인이 발생한 오늘 한국의 방역은 질병 재확산으로의 기로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에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도래한 위기의 그림자 아래서 어떠한 양태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날 그곳에 있던 이들이 성소수자인지 아닌지 알고 싶지 않다. 이는 알 수도 없는 문제이며,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업소의 종류와 감염인의 성정체성을 캐내는 것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데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정된 재난보도준칙에 의하면 언론은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여 “사건 사고의 전체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단편적이고 단락적인 정보를 보도”하지 않을 의무가 있으며, 언론은 “언론의 역할 중에는 방재와 복구기능”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언론과 사회가 감염인의 정보를 다루는 방식은 어떠한가. 인천시는 인권 단체에 성소수자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했고, 언론은 감염의 원인을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의 집단적 문제로 환원했으며, 질병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표현을 사용해 사회 내부에 질병인의 정체성을 검열하고 그 집단을 특정하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 감염의 확진은 특정 정체성의 보유에 대한 낙인이 되어버렸다. 감염의심자들이 자발적으로 방역에 참여해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계기를 언론이 막은 것이다. 감염병의 문제를 특정 정체성을 지닌 집단의 문제로 몰아가기 시작할 때 그 질병은 음지화된다. 이에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재난 앞에서 극복을 위해 언론이 해야 하는 것은 질병과 감염인의 정체성을 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확산의 원인을 감염인의 정체성에서 찾으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막는 것이다. 에이즈가 관리 가능한 감염병이 된 이유는 국가가 에이즈에 걸린 이들을 특정 인물군으로 낙인해 사회에서 배제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단체들이 감염인들과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 있는 이들이 국가의 방역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에이즈와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재난은 기존 사회에 존재하던 문제들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재난 이후의 사회는 재난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재난 이후의 사회에 살아갈 우리를 위해 모두가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재난이 되어버린 재해를 다시 한번 재난으로 만들지 말라. 극복 가능한 질병이 낙인에 의해 특정 정체성에 대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기의 전염병 앞에 선 우리가 맞서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2020년 5월 9일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