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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성명] 그녀의 합격이 바꿀 세상을 응원한다

그녀의 합격이 바꿀 세상을 응원한다

 

지난 123일 트랜스 여성이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합격한 사실이 전해졌다. 다른 모든 말에 앞서 해당 학생의 합격을 전적으로 축하한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지하고 연대해온 박한희 변호사의 존재가 그녀의 용기가 되었듯, 정의와 사람을 수호하는 법학도의 길에 다가선 그녀의 존재가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의 합격은 구태여 트랜스 여성의 합격으로 명명되었고, 뉴스에 나왔다. 한국 대학사회의 퀴어는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어 왔다. 지난 2015, 한국 사회는 서울대학교에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에게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자질이 아닌 그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았고, 2020년에는 여성이 여대에 입학하는 일이 이슈가 되고 있다. 옆 나라 일본에서 오차노미즈 여대를 필두로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이 당연하게도 허가되어가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무례한 현실을 개탄하는 한편, 그 무례함이 그녀와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퀴어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당연히 성 정체성은 굳이 공론화될 필요도 없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사적인 영역의 것이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존재가 그 자체로 이슈가 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이를 드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일상으로써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나, 그런 사회가 존재하기에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용하고 드러내는 일은 존중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그녀의 입학에 찬반을 논하고, 나아가 트랜스 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의 세력을 다시 한 번 직시하는 과정에서 통탄을 금치 못했다. 지정성별과 분리된 젠더개념의 등장은 정치·사회·문화적 차별에 놓인 여성들에게 해방의 언어로 작용하였으나, 젠더는 단순히 사회적 성 역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젠더에는 인지되는 성별로써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일은 지정성별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뿐 아니라, 그와 연관이 깊은 여성성을 향한 사회적 혐오에 응당 대응해야 할 페미니즘의 본질을 뿌리깊이 훼손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일은 논쟁과 설득의 영역이 아닌, 존엄한 개인의 인격에 대한 기본적 존중의 문제에 해당한다.

 

최근 육군에서 트랜스젠더 부사관이 군복무를 결의했듯, 대학을 비롯해 이미 많은 사회에서 자신의 성적정체성을 드러내며 직업 등 생활영역에서의 존엄과 권리를 알리고 지키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투쟁하는 모두를 기억하며, 부당한 강제 전역 명령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택한 변 하사의 결단에 더해 또 한명의 여성으로서 법학도의 길을 걸을 숙명여대 학생에게도 한없는 지지와 응원의 의사를 보낸다.

 

2020131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