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대학 앞 혐오와 차별의 허들을 부수자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 자신을 둘러싼 여론에 부담감을 느껴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성소수자 아웃팅과 색출까지 불사하겠다는 혐오 범죄의 위협과 트랜스젠더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 그리고 성별정체성을 부정하고 성별이분법을 강요하는 혐오발언 등 그녀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달려온 길 위에서 겪었을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녀가 내린 결정에 지지를 표하며, 단연코 누구나 평등해야할 교육의 영역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길을 막은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큰 분노를 표한다.
그동안 A씨는 대중에 노출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과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결정을 해왔다. 그녀가 우리 사회와 숙명대학교에 가진 최소한의 믿음을 바탕으로 선택한 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칭 페미니스트라는 자들은 그녀의 결단에 호응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성 혐오와 소수자 낙인찍기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을 교문 밖으로 내몰았다. 성소수자에게 더 열린 대학을, 더욱 평등한 교육을 만들기 위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혐오와 차별의 허들을 부숴야 했을 우리 사회는 도리어 그 허들을 더욱 추하게 만들어 버렸다.
숙명대학교 본부는 예비 신입생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안팎에서 공격받고 결국 진학을 포기하기에 이른 작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언론은 개인의 적법한 입학과 교육권 실현이 반대에 부딪치는 비이성적인 상황을, 찬반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에서만 보도하며 차별과 혐오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교육권과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숙명대학교에서 A씨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1957년 미국 백인 사회가 아칸소 주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에 입학하려한 흑인 학생 9명의 등교를 금지시켰듯이, 2018년 한동대학교가 학내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한 학생을 부당 징계로 내쫒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A씨가 혐오에 굴복해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 앞에 A씨가 트랜스젠더 여성인 자신의 모습과 꿈을 당당하게 드러낸 순간, 우리는 평등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으며, 그 동력은 트랜스젠더 권리 신장과 A씨의 결정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우리 곁에 울려퍼지는 이상 언제까지나 유효하다.
지금 A씨는 보다 안전하고 굳센 다음 한걸음을 디디기 위해 한 발 물러서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용기에 힘입어 몇 발자국은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대학 앞 혐오와 차별이라는 허들을 부수고 모두에게 평등한 대학과 사회를 만드는 그날까지 우리는 더욱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결단과 함께 전국에서 각자의 꿈을 펼치면서 평등과 성소수자 차별반대를 외쳤던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 동료들, 그리고 엘라이들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한 번 A씨에게 지지와 연대의 인사와 함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종식되어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권리가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2020년 2월 7일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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