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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QUV 성명] “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까?”

[QUV 성명] “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까?”

여느 때처럼 정치계에서 혐오발언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2020년의 총선을 앞둔 우리는 그 모든 혐오의 부조리함을 일일이 열거하는 방식만으로 혐오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의 존재가 찬반의 대상이 되고, 청정 국가를 위해서는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받고, 누군가의 삶과 권리에 대한 주장이 소모적인 논쟁 따위로 취급받는 일의 부당성에 대해 너무 오래, 또 너무 많이 이야기해왔다. 우리는 정치의 장에 혐오를 재생산하는 정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보게 한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게 하였는가. 혐오는 정치의 장에서 하나의 자유로운 주장이나 숭고한 종교적 신념 즈음으로 포장되었으며, 누군가는 서슴없이 혐오하는 정치인들의 발화를 노련한 정치인의 소신이라 칭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왔다. 정치는 혐오를 재생산했고, 혐오를 내재화한 사회는 혐오의 정치에 표를 던져왔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방안 대신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할 방안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기이한 선거유세가 펼쳐졌다. 표를 위해 누군가의 인권을 소모한 정치인의 혐오발언 뒤에는 혐오를 신봉하는 이들의 열렬한 비호가 있었고, 그 비호로 하여금 혐오를 추동한 사회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혐오가 정치로 둔갑하도록 용인해온 사회의 방조와 침묵의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유구한 혐오와 폭력과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이어나간 이들은 누구인가. 그 주체는 특정 정치인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명부의 성별표기로 인해 당장 투표소에서마저 몸에 대한 검열을 피해갈 수 없는 오늘의 우리는 현 정치인들과 정치 체계의 혐오적 행태에 초점을 둬 규탄한다. 이는 몸과 몸에 대한 낙인이라는 구조적 혐오가 다양한 방면에서 가시화된 올 겨울을 겪은 우리에게 21대 국회가 유난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이 시대 국회의 책무를 인지한 우리는 이번 총선의 과정과 결과에 신경을 집중하며, 고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21대 국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의 투표와 연대로서의 행동에 앞장서자. 물론, 늘 그렇듯, 우리의 투쟁은 단 한 번의 선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이 오롯이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누군가의 존재를 국민적 합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혐오의 논리에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국의 한 장면에 주목하며 글을 마친다.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동성애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던진 오세훈 후보는 어떤 인권 의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 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냐고. 맞다. 인권에는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삶에 대한 권리가 한갓 논쟁의 대상 따위로 소모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의 아집에 사로잡힌 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동의할 자명한 명제이나, 다만 발화자와 발언의 간극이 새삼스레 놀라울 뿐이다.

그리하여 반대되고 검열되어 소모적인 논쟁거리가 된 우리도 같은 말로 묻는다. 
“또 국민적 동의가 필요합니까?”

2020년 4월 14일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