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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중앙대 레인보우피쉬 성명] 깃발을 뺏기고, 깃대가 부려져도. 우리의 자긍심은 지금 여기에 있다.

[중앙대 레인보우피쉬 성명] 깃발을 뺏기고, 깃대가 부려져도. 우리의 자긍심은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집단적 혐오범죄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방관한

인천지방경찰청· 인천동구청을 규탄한다.

지난 9월 8일 동인천 북광장에서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합법적으로 신고를 마친 축제에 혐오범죄집단은 불법으로 광장을 무단 점거하여 축제를 위한 부스와 무대 설치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뿐만 아니라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물리적 폭행과 성희롱, 불법촬영, 집단적 위협 등을 가했다. 그날의 불법행위와 범죄행위에 대해서 증언하는 글과 영상들은 축제 후 5일째인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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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레인보우피쉬도 그 자리에 있었다. 처음 우리의 깃발은 폴리스라인 밖에서 세워졌다. 그곳 역시 집회신고가 된 곳이었지만, 우리는 공권력의 보호 없이 맨몸으로 혐오범죄집단에게 노출되었다. 우리가 깃발을 세우자, 주위에 있던 혐오범죄세력이 다가와서 깃발을 내리라고 위협했다. 깃발을 내리지 않으면 위해를 가할 것처럼 “말로 해서는 안되겠네”라는 말과 함께 “여기 깃발 들었어! 다들 여기로 모여!”라며 다른 이들을 불러모았다.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혐오세력들이 몰려와 깃발을 둘러싸고 우리를 위협했다. 이후 간신히 폴리스라인 안쪽,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지만 우리의 정당한 집회신고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공간을 보장하지 않은 경찰에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한 회원은 지하철 출구부터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혐오세력의 폭언과 물리적 방해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말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렇게 축제 참가자들은 그곳에 수시간 이상 고립되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식사와 물도 먹지 못한 채로 그 곳에 방치되었다. 간신히 작은 틈으로 건내 오는 초코바와 물들을 너나 할 것 없이 나누는 모습이 우리의 연대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연대에 감사할 새도 없이 현장은 전쟁통과 같았다. 행진이 시작된 이후에도 대략 2시간 동안 가량 조금 나아갔다 다시 물러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우리의 깃발이 선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혐오세력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모두 점거하고 행진을 방해하고 있었다. 오랜 대치가 지속되던 와중에 경찰이 길을 만들었고, 그 틈을 지나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도로를 점거하던 혐오세력들은 경찰과 참가자들을 도로 벽으로 밀었고 그 틈에서 우리의 깃발을 들고있던 회원은 자칫 압사당할 위기마저 겪었다.
이 과정에서 벽과 사람들 사이에 낀 우리의 깃대는 꺾여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후에도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혐오범죄세력은 수많은 단체들의 깃발을 탈취하고 깃대를 부러트렸다. 부러진 깃대 끝이 행진 참가자를 향해 자칫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 혐오범죄세력은 행진 참가자가 실신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며 구급차로 실려가던 모습을 보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그 악한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뒤로도 우리에게 허락 된 길은 아주 좁았고, 혐오세력과 온전하게 분리되지 못했다. 끊임없이 퍼붓던 혐오범죄세력의 폭언과, 우리의 행렬을 끊기위해 폭력을 휘둘러 경찰과 행진참가자들을 벽으로 밀어붙이던 그 길은 마치 사방의 가시가 온 몸을 찌르는 가시밭길과 같았다.

우리는 분노의 마음으로 경찰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명백하게 혐오범죄세력이 위법을 저지른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축제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혐오범죄집단에게 수십 차례 해산 명령만을 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느냐고. 몇 명의 혐오세력이 연행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혐오세력들을 뒤에서 다시 풀어주던 모습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축제 참가들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책임에서 경찰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중앙대에 이런 동아리가 있느냐”

우리가 깃발을 올리자 들었던 한 혐오세력의 질문에 지금 이자리에서 답하고자 한다. 우리는 단호하게 말한다.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중앙의 역사는 수 많은 성소수자들과 함께한 역사라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 라고 선언하지 못한 곳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동인천 북광장/인천 역시 우리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고 엄중하게 선언한다.

우리는 분명히 승리한다. 오늘 하루 눈물이 흐르더라도, 그 눈물은 강이 되어 바다에 닿을 것이다. 그 바다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헤엄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서로의 용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모일 것이다. 퀴어와 그 벗들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의 개최에 진심으로 축하와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2018년 9월 9일
중앙대학교 성소수자인권동아리 레인보우피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