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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서울여대 슉 성명] 우리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서울여대 슉 성명] 우리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혐오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축제 참가자들에게 범죄를 일삼은 혐오세력들과,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인천지방경찰청, 그리고 부당한 조건을 내걸며 혐오세력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동구청을 강력히 규탄한다.

지난 9월 8일, 동인천역 광장에서 개최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는 그 어디에도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퀴어문화축제의 주인공인 퀴어와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보다 더 큰 세력으로 구성된 혐오세력에게 축제는 점거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오로지 그 자체만을 보여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신체적, 언어적인 혐오를 가감없이 표출했다. 우리는 축제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존재 그 자체로 반인륜적 행위를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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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집회신고 시간을 훌쩍 넘기고 도착하는 바람에 그 사이 인천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혐오단체들은 광장을 불법점거했으며 그 곳은 더 이상 축제가 아닌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경찰이 도착한 이후 폴리스라인이 구축되어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혐오세력들은 고가도로 아래를 행진하며 지나가는 축제 참가자들을 보고 경찰과 폴리스라인을 뚫고 달려가 깃대를 포함한 그들의 행진물품을 부수는 행위를 일삼았다.

그들의 폭력적인 행태는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행진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유튜브와 개인 SNS에 업로드해 조롱하고, 혐오했다.

또한 혐오세력들은 “회개해야 한다.”, ”사랑하기에 반대한다.” 라는 그들만의 구호를 앞세우며 참가자들을 짓밟았다. 성경 어느 구절에 ‘사랑을 앞세워 폭력을 행사하라’는 말이 명시되어있다는 것인가?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성경’이 헌법을 포함한 모든 기준보다 우선시되는 듯 보였다. 타인이 자신과 다르다고 하여 배격하는 것이 과연 종교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그러한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혐오단체에게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았고, 축제 참가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좁은 인도로 행진 참가자들을 이동하도록 하였으나 혐오세력은 굴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단합하여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물리적 폭력, 성희롱을 포함한 뭇 언어적 폭력을 퍼부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참가자 이전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 자체를 박탈당하는 순간이었다. 쏟아지는 물리적인 폭력에 도움을 요청해도 경찰들은 묵묵부답으로 뒷짐을 진 채 응시하기만 하였으며 축제 참가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또다른 참가자 뿐이었다. 경찰은 참가자들의 보호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으로 행동했으며 혐오단체를 향해 “해산해야 한다.” 는 말만 반복하였고 참가자와 단체들의 깃발이 보이는 것에 제제를 가하였다. 그 깃발은 그저 우리의 존재에 대해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어떤 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혐오하지 않았다.

혐오 앞에서 방관하는 것은 혐오하는 자들에게 은근히 편승하는 것이다. 혐오세력들은 경찰의 태도에 과격한 행위를 더욱 부풀렸고 경찰은 이를 용인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경찰은 축제 시작 전부터 사건이 일어날 것에 대한 경각심을 전혀 갖지 않았고 그 이후의 해결책 또한 전혀 내놓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축제가 불법 폭력 집회와의 투쟁, 더 현실적으로는 폭력 단체들의 일방적인 협박과 구타의 현장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제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축제가 아닌 아수라장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인천 동구청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구청은 그 어느 축제에서도 보지 못하였던 이례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단 하루 안에 300명의 안전요원과 100면의 주차장을 확보해오라는 것이었다. 이는 다분히 억지스럽고 부당한 조건이며, 이 때문에 광장에는 혐오의 목소리가 가득차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욱 단단히 결속하여 손을 잡고 행진했다. 그 어떤 폭력과 비방에도 우리는 꿋꿋이 지지하고, 연대하였으며 혐오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우리의 존재를 표현한 깃발을 내리라는 고함을 들어도, 우악스러운 손길에 깃대가 부러져도, 행진을 하다가 욕설을 듣고, 폭력을 당하고 20분 거리를 5시간만에 돌아와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연대할 것이며, 끝까지 소리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2018년 9월 14일
서울여자대학교 성소수자인권모임 SWUQ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