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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QUV 성명]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기독교 혐오세력과 인천 경찰, 동구청의 책임을 묻는다.

[QUV 성명]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기독교 혐오세력과 인천 경찰의 안일한 대응, 그리고 이를 방관하기만 한 동구청의 책임을 묻는다.

 

지난 9월 8일 동인천역 광장에서 진행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는 혐오와 폭력이 난무했던 아수라장이었다. 개최 시간 전부터 동인천역 광장에 드러누워 부스 설치를 방해했던 인천기독교총연합회 등의 혐오단체들은 오전 11시경이 되어 자기들 세력이 구성된 이후에는 무방비의 축제 참여자들을 상대로 집단적 린치를 가했다. 축제 참가자들의 광장 진입을 가로막는 것은 기본이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피켓과 고성으로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위협했다.

혐오단체들은 퀴어문화축제를 무산시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인간 벽을 만든 혐오자들이 광장의 시민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내어 다치게 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마스크를 쓴 남성들은 카메라를 내세워 폭력에 맞선 사람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 ‘떳떳하다면 얼굴을 가리지 말라.’라는 헛소리와 성희롱이 난무했고 같은 구멍에서 나온 소리 중에 진정으로 성경에서 비롯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휠체어를 탄 축제 참가자를 넘어뜨리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일말의 양심도 없이 같은 인간을 향해 무법적 행위들을 일삼았던 그들은 이성을 가진 시민보다는 가히 인두겁을 뒤집어쓴 야만인에 훨씬 가까웠다.

이날 동인천역 광장에서는 퀴어뿐만 아니라 모든 소수자성이 보수 기독교단체에서 자행한 폭력의 대상이 되었으며 시민들의 공간이었어야 할 광장에서 보편적 인권과 시민성은 실종되어버렸다. 경찰통제선이 구축된 이후에도 혐오자들은 끊임없이 축제에 난입하기를 시도했고 경찰과 축제 참가자들을 에워싸 광장 구석에 고립시켰다. 몰지각과 편견을 근거로 스스로 성소수자를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퀴어문화축제의 참가자들 또한 인천 시민이자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믿지 않았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방해와 폭력은 인권탄압과 인권침해를 명분으로 소수자성을 가지거나 그에 연대하는 개인들에게 자행된 명백한 혐오범죄였다.

인천 경찰은 정당한 집회신고자인 축제 참가자들을 혐오세력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상황 통제에 미숙함을 보였다. 축제 초반부터 인천 시내로의 행진까지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단체들이 도로를 무단점거하여 행진 대열과의 대치상황이 지속되었으나 경찰은 해산 명령만 반복할 뿐 이들을 물리적으로 해산시키는데 소극적이었다. 경찰에 의해 집회에서 끌려 나온 혐오자들은 연행되지 않고 바로 훈방되어 다시 혐오집회에 동참했다. 그 때문에 곳곳의 사각지대에서 축제 참가자들이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우리는 결국 무고한 축제 참가자들이 폭력에 당해서 구급차로 이송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동등한 두 세력이 맞붙는 집회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세력의 일방적인 테러가 자행되었던 인천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인천시 동구청과 인천 경찰은 방관적 태도만을 고집했다. 동구청은 이미 ‘혐오세력과의 충돌’을 빌미로 축제 측의 광장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은 바가 있으며,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을 이번 폭력사태를 대비한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인천 경찰은 현장에서의 판단 능력을 상실하고 윗선의 명령만을 기다리며 대치상황을 질질 끌다가 종국에는 행진 대열에 말도 안 되는 합의를 종용했다. 행정기관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을 온전히 사회적 소수자들이 지어야 할 짐으로 떠넘긴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로서 기능했어야 한 그들은, 사실 갈대와도 다름없어 가해자들에게 쉽게 고개를 숙였다.

경찰이 종용한 합의의 내용은 퀴어문화축제 참여단체들의 깃발을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위협적으로 사용된 것도 아닌, 그저 단체와 정체성의 표현 수단에 불과한 깃발이 어디가 문제라는 말인가? 경찰의 말대로 깃발을 내린 축제 참가자들은 남은 행진 경로에서 단체나 깃발도 아닌, 개인의 정체성을 향한 차별과 멸시를 오롯이 받아야만 했다. 이때 혐오세력들을 저지하는 경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폭력과 성희롱, 초상권 침해로 점철된 혐오세력의 차별적 행태 중에 그 어떠한 것에도 진중한 태도로 대응하지 않았으면서, 성소수자의 집회와 정치적 자유에는 또 한 번 '합의'라는 잣대를 들이대었던 인천 동구청과 인천 경찰의 이중적인 태도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행정적 무능으로 인천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방해하고 축제 참가자들을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한 동구청과 경찰을 강력히 규탄한다. 특히 인천시 동구청장과 지방경찰청장에게는 이번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의 책임을 물으며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온갖 혐오와 행정적 방해에 부딪혔음에도 인천퀴어문화축제는 개최지였던 동인천역에서 마무리되었다. 끝까지 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행진 도중 잠깐 거두어졌을 뿐 인천 하늘에는 온종일 무지개 깃발이 펄럭였다. 축제에서 직면한 차별과 혐오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2018년 9월 8일, 동인천역 광장에 있었던 모두가 떳떳하게 흘리지는 못할지언정 서로의 싸움 앞에서 부끄럽지는 않은 눈물이었을 것이다. 축제 참가자였던 우리 모두에게 고된 하루였다.

고난의 길을 걸으라는 종교의 과격파 신도들이 스스로 우리의 고난이 되기를 택했다면, 우리는 기꺼이 밟아주자. 그게 가시밭길이 되었던, 고개를 숙인 갈대밭 길이 되었던 보란 듯이 밟아 함께 걸어 나가자. 발자국 위에 서린 상처와 눈물은 마지막까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라고.

2018년 9월 9일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