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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고대신문 1871호 <종단횡단> 칼럼에 대한 의견/ 고문 심기용]

1. 고대신문 1871호 <종단횡단> 칼럼 원본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
2. 칼럼 외부 피드백에 대한 고대신문 대응 평가

고대신문에서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주셔서 답변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고문 심기용입니다.

서강대학교 춤추는Q 측에서 박성수 기자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내용을 QUV로 전달하여 의견을 구하셔서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대신문의 발전을 위하여 고생하시는 기자님의 수고에 경의를 보냅니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기 전에 우선은 혐오표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두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일단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개인의 부정적 감정과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혐오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어떤 표현이 특정 집단의 사회적성원권을 침해하고 사회로부터 배제와 소외를 일으키게끔 하는 표현이라는 지점입니다. ‘사회적성원권이란 시민권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회구성원이 그 사회의 성원이 되기 위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시민권이라는 표현이 법적으로 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의 권리를 표현한다면, 사회적성원권은 법적으로 시민권이 없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인, 가령 난민과 같은 주체들도 포괄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문제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1, 칼럼에 대한 피드백

표현의 자유는 말 그대로 어떤 표현이든 표현될 수 있어야 할 자유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고대신문에 올라온 칼럼 역시 표현될 수 있던 것이겠죠.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매우 피상적이며 아주 중요한 논의 지점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 사회에서 왜 누군가는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말할 수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하는 주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표현이 자유롭겠습니까. 글자가 춤을 추고, 낙서가 뛰어다니고 하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려면 기계적으로 어떤 표현의 사용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표현의 주체들이 놓인 환경과 구조에 어떤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컨대 해당 칼럼조차도 사과하라며 언성을 높인 사람들의 표현을 기계적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칼럼의 결론에 의하면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하고, 이런 칼럼을 써서는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권력구조와 관계없이 다룬다면, 표현의 자유는 논의조차 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칼럼을 통해 스스로 말하고 싶었던 것도 사과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권력적이었다는 평가인 것이지, ‘모든 표현이 용인되어야 한다 아니다가 아닌 셈입니다.

한편 앞서 말씀드렸듯이 혐오표현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한 집단의 사회적성원권을 위협하고 제약한다는 지점입니다. 저는 남성이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말이 혐오표현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그건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판단이니까요. 그리고 이성애정상성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비판하는 이유는 이성애정상성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좋아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칼럼에서 표현되지 않은 맥락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굳이 그런 말을 했던 상황적 맥락이 혐오적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 말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위협적이었거나 소외시키는 맥락에서 발화되었기 때문에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사과를 요구했겠죠.

렇기 때문에 글쓴이는 사과가 강요되고 있다는 상황을 권력적인 것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문제시 된 발언이 소수자 집단을 비규범적으로 평가하고 소외시키는 권력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수자들을 주변화 시키는 말하기야말로 역설적으로, 소수자들의 (글쓴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민주 사회의 위협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고대신문 대응에 대한 피드백

고대신문의 첫 번째 사과문이 재발방지대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점은 확실히 아쉬운 점입니다. 두 번째 사과문이 단지 입장 표명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대신문이 이어나가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대응은 언제나 미숙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이시되 침잠하거나 소진되시진 않으시길 바랍니다.

대응에 대한 피드백은 더 할 말이 없되, 고대신문에 당부 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아마 고대신문이 지금 솔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데스킹이나, 검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기사를 내고,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 사과를 한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줄 압니다. 그 자체로 기자들을 아주 크게 압박하고 위축시키는 일인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번 사과를 외부 압박에 대한 굴복의 의미로 내부에서 수용하지 않길 바라기도 합니다.

사회적 차별이나 혐오가 실린 글을 신문에 함부로 게시하면 안 되는 이유는 언론이 자유하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언론의 격과 질을 낮추어 신문이 스스로 공신력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과는 단순히 어떤 칼럼을 게시했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문이 스스로 공신력과 공공성을 훼손한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고대신문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라는 틀에서 피상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표현과 언론의 효과를 고민하고, 한편으로는 소수자에 대한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고대신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과문 내용을 미루어보아 아마 내부적으로 그런 고민이 더 깊이 진행되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피상적인 갑론을박에 소진되시지 마시고, 대신 사회 환경과 구조 안에 있는 권력 작동을 더 비판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가는 좋은 계기가 되기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