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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성명] 해군 영내에서 성소수자 여군에게 자행된 교정 강간과 성폭행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성명] 해군 영내에서 성소수자 여군에게 자행된 교정 강간과 성폭행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소수자를 향한 천인공노할 성범죄가 대한민국 군대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해군 대위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해군 장교 2명이 지난 11월 19일과 8일에 열린 고등군사법원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7년 6월 가해자로 지목된 A소령과 B대령이 구속된 후, 그들에게 각각 10년과 8년의 징역형을 내린 1심 재판을 뒤집고 나온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다. 19일 A소령을 피고인으로 하여 열린 항소심에서 고등군사법원 특별재판부 홍창식 재판장은

“폭행 협박이 인정되기 어렵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진술이 피의자의 진술에 비해 신빙성이 부족하다”

라는 이유로 ‘군인 등 강간치상’과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2010년 A소령과 B대령(당시 중령)이 해군 중위로 복무 중이던 피해자 C대위를 영내에서 성폭행한 것이 구속수사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고등군사법원은 ‘성폭행 상황에서의 피해자의 행동과 진술의 신빙성’만을 문제 삼으며 가해자들의 더러운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미 작년 7월부터 9개월간 진행된 1심 재판 과정에서, A소령에 의한 수차례의 성폭행으로 C대위가 군 복무 중에 원치 않는 임신과 중절 수술까지 한 사실이 확인된 후였다. 사건이 발생한 2010년, A소령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같은 함정에서 근무 중이었던 부하 C대위(당시 중위)에게 상습적으로 강간과 성추행을 자행했다. 성범죄의 장소로는 영내와 술집, 숙박업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A소령은 성소수자인 피해자에게 ‘남자 맛’을 알려주겠다며 ‘교정 강간’마저 합리화하는 악행을 일삼았다. 피해자는 A소령의 군사 계급에 따른 위력행사와 상관인 그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음주나 행동, 업무와 일과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상황이었다.

이 성범죄가 발생한 함정의 함장은, 또 한 명의 성폭행 가해자 B대령(당시 중령)이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피해자가 어렵게 사건 경위를 밝히고 중절 수술을 위한 휴가를 취한 후 돌아오자, B대령은 그에 대한 위로를 핑계로 C대위를 본인의 숙소로 유인한 뒤 강제적으로 술을 먹이고 강간한 것이다. 복무지에서 발생한 부조리를 돌아봐야 할 상관이, 강간의 피해자인 부하에게 또다시 강간을 자행하는 인두겁을 벗겨내도 모자랄 만행을 저질렀다. 이와 같은 가해자 A소령과 B대령의 야만적인 악행에 가히 국군 병영 문화의 적폐가 낱낱이 드러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군을 대상으로 한 국군 내 성범죄 고발이 잇따르고 검찰청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서 미투 운동이 촉발되었음에도, 성범죄를 향한 대한민국 정부와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그치고 있다. 국방부 산하 고등군사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식 태도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인으로 구성된 군사법원이 군인 성범죄자들에게 관대한 형량을 내리고 그마저도 고등군사법원에서 감형시켜주는 관행이 늘 있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달 군사법원 등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3년 동안 보통군사법원(1심)에서 성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겨우 11.57%에 불과했다. 게다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항소된 성범죄 관련 재판 528건 중 154건(29.17%)이 고등군사법원(2심)에서 감형됐다. 이는 3건 중 1건에 달하는 수치이며, 반대로 항소심에서 형량이 가중된 사례는 단 27건(5.11%)에 불과하다.
‘영내 성폭력’이라는 천인공노할 범죄에도 면죄부와 감형을 남발하는 군사법원의 작태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통계로 집계된 군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에는 피해자가 민간인인 경우도 허다하며, 민간인이 성범죄를 저지른 후 군에 입대하여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러한 성범죄에 대하여 군사법원은 국민들에게 겉으로는 ‘군 기강’을 운운하며 군율을 수호할 것을 약속하지만 속으로는 가해자에게 면책특권을 내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군 기강 확립만을 위해 존재하는 군사법원은 민간인 피해와 여군 또는 성소수자 군인과 같은 영내 소수자 문제는 철저히 배제한 채, 한없이 낮은 수준의 인권 의식과 성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위력은 있었으나 위력의 행사는 없었다.‘

따위의 사법부 판결을 꾀꼬리처럼 번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폐단은 군사법원이 폐쇄적인 병영 문화에 동조하여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견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를 근거로 동성애자의 존재와 하물며 합의에 따른 동성 간의 성행위가 군기강을 무너뜨린다며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지만, 실제로는 여군을 대상으로 한 영내 강간과 성추행이 은폐되는 현실과 그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는 군사법원이 바로 군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주범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군대 내에서 인권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시되어 바로 서는 것이 군의 기강을 세우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번 해군 영내 성폭행 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상하관계에 예속된 성소수자 여군임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악질이다. 특히나 A소령이 C대위에게 자행한 ‘교정 강간’은 피해자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음에도 피해자를 자신이 요구하는 성역할에 순응하게 만들기 위해 강간을 합리화한 것으로, ‘타인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여 성적 지향을 교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성소수자 혐오범죄이다. C대위는 성폭행 피해로 인해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고 복무 중 근무지 이탈을 하여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C대위가 항소심에서 강간을 당했던 날의 모습을 직접 시연하기까지 했지만 고등군사법원은 모든 증거와 피해자의 목소리를 깡그리 무시했다. 항소심은 철저히 가해자 중심적으로 진행됐으며, 재판부는 피해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고통을 느낄 피해자에게 피해 입증과 성폭행 사건의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군대 내 소수자를 대상으로 자행되는 혐오 범죄와 군사법원 재판부의 2차 가해를 더는 눈뜨고 두고 볼 수 없다. 우리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는 국군 내 소수자와 성범죄 피해자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가해자 다수의 입맛에 맞춘 판결만을 쏟아내는 고등군사법원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 병영 문화의 폐쇄성과 부조리에 부역하고 있음이 드러난 군사법원은 더 이상 군 기강과 개혁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 사법기능을 상실한 군사법원은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의 2차 피해를 그만두고 기관으로서 자결하라.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에는 하루빨리 고등군사법원의 폐지를 논의하고 사법 제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한다. 국방부는 국군 내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 차별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가해자들을 엄벌로 처하라. 죄질이 심각한 A소령과 B대령에게는 강력 처벌을 내리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국가가 지금과 같이 성범죄 피해자의 권리를 외면하고 사회에 만연한 혐오 범죄와 인권 침해를 방조한다면 우리에게도 지켜야할 조국이란 없다. 우리는 피해자와 연대하여 국군과 대한민국 사회의 부조리에 끝까지 함께 맞설 것이다.

2018년 11월 26일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