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2019/05 글 목록 -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_큐브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제11대 의장 기진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학생의 입학을 거부하겠다고 학칙에 명시해놓은 대학.
교내에서 무지개색 옷을 입거나 페미니즘 강연을 개최하면 학생을 징계하는 대학.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이나 현수막, 행사는 불허하는 대학.

  모두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학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대학에서든 다를 바 없이 입학 이후 새내기들이 대학과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는 공동체와 학교 생활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자신감을 일깨워주는 말일 것입니다. 저의 새내기 생활 역시 그랬습니다. 우리 대학은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뜻에서 설립되었다는 말들은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부푼 꿈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제 마음에 기대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에서의 생활이 긴장과 싸움의 연속이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항상 저의 성정체성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저에 대해 제가 모르는 소문이 나는건 아닌지 신경 쓰면서, 무례한 추측과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대형강의나 학과 행사에서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어도 자신 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렇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대학 본부든 교수든 학생사회든 제대로 대처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불어넣은 자긍심은 단 한 번도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안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 세상에 저 뿐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많은 대학과 지역에서 성소수자 학생과 청년이 모인 자치 모임들이 조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 내에 이러한 모임들이 조직되고 가시화되면서 이들을 향한 성소수자 혐오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숭실대, 한동대, 장신대에서 일어난 일들, 대학 본부가 나서서 성소수자 또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징계하고 인권 활동을 검열, 탄압했던 사건들을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만이 끝은 아닙니다. QUV에서는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 차별 사건들이 상시적으로,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최근 고려대학교 교지인 고대신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용인해야한다는 칼럼이 버젓이 기고 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 동아리의 홍보물이 뜯기거나 짓밟혔으며, 가천대학교 본부는 오늘, 아이다호를 알리는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의 현수막 게시를 거부하고 활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인천대학교에서는 단체의 정체가 불명하고 폐쇄적이라는 핑계로 성소수자 동아리의 중앙동아리 인준을 부결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QUV의 회원들은 에브리타임이라는 대학 게시판 어플에서 성소수자 정체성을 희롱하는 글들이 판을 치는 것을 지켜고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동아리가 대학축제 때 부스를 내었더니, 그 앞을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부스를 보면서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다 거르면 되겠다"라며 웃으며 지나갔다는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이 대학이 싸움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면서 끝까지 굴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면 배척하겠다는 끔직한 태도를, 전혀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이 폭력적인 배제의 문화를 뚫고 나가, 교육공간 안에도 우리가 있고 나아가 이 사회 어디에나서나 우리가 존재함을 알릴 것입니다.

  여러분, 대학과 관련해 큐브 의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소신은 대학이 지성인의 공간이기 때문에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의 변화를 외치는 것은 대학에도 성소수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 어느 대학도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 구성원을 자의로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은 민주주의와 사회구성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만용과 차별을 정당화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학 이념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고 우리를 차별할 수 있어야 대학의 자율성이 지켜진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은 모두 그 댓가를 치루게 하거나, 변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대학 사회의 변화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결혼 법제화, 성별정정특별법 제정, 전파매개금지조항 19조 폐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학청년 성소수자 모임들과 세상을 반드시 바꿔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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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는 학생인권이 두려운가? - 경남도의회 교육상임위원회의 학생인권조례 상정 부결에 부쳐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 경남도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학생인권조례 상정을 부결했다. 학생인권조례 반대자들은 으레 그렇듯 해당 조례가 "학생들을 문란하게 만들 것"이라거나 "학생인권이 보장되면 학생들이 교사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오랜 만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경남도의회의 압도적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결국 교육상임위원 중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되었다.

학생들의 인권이 지켜지면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우스운가. 비슷한 이야기들을 우리는 수차례 들어왔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면 경제는 성장할 수 없다",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이 보장되면 사회는 인구재생산에 실패할 것이다"와 같은 말들. 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의미한다. 그 기본권을 침해해야만 사회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사회의 목적은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데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이 보장되어야 경제성장이 의미가 있고,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인구재생산도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은 학생을 평등한 인격자로서 대우하고 차별하지 않으며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의미가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그 취지에 대한 제도적 선언이다.

반대자들은 여러가지 두려움을 털어놓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반대자들은 학생의 성정체성을 존중하면 학생들이 문란해진다고 걱정하지만, 오히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성정체성을 부인당하는 환경 때문에 자신의 삶으로부터도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성적권리를 존중하면 무분별하게 성행위를 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스쿨미투가 증언했듯이 실제 학생들이 겪는 것은 온갖 성희롱과 성폭력이 횡행하는 성차별적인 현실이다. 교권이 추락한다고 하지만, 통계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대한민국 청소년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본권 보장은 민주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것임에도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학생들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짓누르는 등 존중 없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자 함일 것이다. 반대자들은 그것을 교권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이 교권추락으로 언급하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존중과 존엄을 충분히 학습할 수 없게 만들었던 교육환경이 존재한다. 숭실대학교나 한동대학교가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은 차별해도 된다고 명시적으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왜곡된 교육환경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이 비뚫어진 교육환경을 바로 잡을 기회다.

교육상임위원회에서 상정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전체 도의원의 3분의 1의 동의를 얻거나 의장이 직권상정하면 5월 24일 있을 임시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상정할 수 있다. 경남도의회는 총 58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34석, 정의당이 1석으로 소위 '범진보적인' 정당이 압도적이다. 촛불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우수수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도 경남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해 힘껏 연대한다.

2019.05.16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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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입니다! 큐브는 작년 하반기부터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개설하여 소통의 벽을 낮추고 큐브의 소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도 더 많은 분들이 큐브를 친구추가하여 다채로운 소식을 바로 받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추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카카오톡 검색창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_큐브' 검색!

♬ 위 웹자보의 QR코드 찍기!! 그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링크로 플친 맺기 ☞ ☞ https://pf.kakao.com/_Yrc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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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일치' 결정 환영집회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에 참여했습니다.

#낙태죄는_위헌이다 #더이상낙태죄는없다 #우리는_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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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D-365, 혐오에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

 

선거에서 혐오표현 규제를 촉구하는 시민 선언

4월의 꽃 향기에도 혐오의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미세먼지에 마스크를 쓰듯 혐오를 피하고 싶으면 귀 닫고 눈 감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귀 닫고 눈 감아도 혐오라는 폭력은 피해를 남긴다. 게다가 선거 때가 되면 귀 닫고 눈 감을 수도 없다. 우리는 각자의 정치적 신념을 투표로 드러내고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만약 우리가 귀 닫고 눈 감아야 한다면 그것은 참정권의 부당한 제한일 뿐이다.

우리는 2018년 지방선거를 기억한다.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의 성차별적 발언과 동성애 비하, 보수교육감 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동성애 반대' 공보물과 현수막 같은 것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로는 모두 61건의 혐오 표현 제보가 접수되었다. 동성 연인과 거리를 지나다가 "동성애는 죄이고 몰아내야" 한다는 유세를 들었고 "그 장소에 있기 곤란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신고된 혐오표현의 80.3%는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한편, 한 정당의 여성 후보 포스터가 노골적으로 훼손되는 범죄도 있었다. 거침없는 혐오는 성소수자나 여성, 이주민 등이 동등한 민주주의의 주체로 인정된다고 확신하기 어렵게 만든다.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고착시키고 차별을 조장하거나 증오를 선동하는 표현은 소수자들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당하는 집단의 성원은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지며 공론장은 결국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잔치가 될 뿐이다. 선거에서의 혐오 표현은 규제의 필요성이 더욱 높다. 선거공보물 등이 모든 국민에게 전달되고 후보들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작지 않은 등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라는 이유로 후보의 발언에 면죄부가 주어진다. 선거제도는 마치 후보의 자유를 지고의 가치로 보호하는 제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시민의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존재한다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후보 간 비방은 안되지만 후보가 시민을 비방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모순을 그대로 둘 것인가. 선거는 혐오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 시기 혐오표현 근절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때 선거관리위원회는 마땅한 제도나 뾰족한 방법이 없어 어렵다며 발을 뺐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면 찾아내고 제도가 없다면 만드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이다. 시민들을 모욕하는 선거, 어떤 정체성을 가지는가에 따라 마치 시민권이 없다는 듯 공공연히 추방을 선동하는 선거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선거 당시에는 미처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면 이제는 더이상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없다. 1년이 남았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혐오를 각 정당과 후보들이 깨닫고 폭력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가 필요하다. '동성애 반대', ‘이주민 추방'과 같이 소수자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이 구호로 사용하는 표현을 금지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추진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때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일 수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을 촉구한다. 우리 역시 선거가 혐오의 면죄부가 되지 않도록 혐오와 차별에 맞설 더 많은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2019년 4월 15일

선언에 동참하는 70개 단체 및 355명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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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창구입니다.

사실관계를 듣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HIV 감염인이라고 공공연하게 지목되어, 불필요하게 격리되어 살아왔다니요. 저는 어제도 HIV 감염인 친구와 술을 마시고, 팔장을 끼고 서울 시내를 걸었습니다. 제 친구는 언제나 그렇듯 기분 좋게 취하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제 친구는 애인과 성관계 이후에 감염 사실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감염사실만으로도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평생의 병을 얻어서 좌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HIV에 감염됐다며 손가락질할 사회에 좌절했습니다. 친구는 언젠가 저에게 감염 사실을 고백하며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며 제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다 알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HIV 감염인이 반드시 에이즈 발병자는 아니며, HIV 감염인의 곁에 있다고 모두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요.그리고 에이즈 걸렸다고 모두 사망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공포는 모두 근거가 없음을요. 저는 제 친구와 한 평생을 살면서 경험하였습니다.

아직 20대인 그 친구는 아직도 자신이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밝히지 못합니다. 건강에 관한 의학적인 진보가 이뤄지고, 그 지식이 널리 퍼졌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감염인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은 차별이지, 감염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에도 HIV 감염인 친구들이 있습니다. 격리할 것이라면 저희도 격리하십시오.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낙인을 저와 제 PL 동료들이 함께 받아내겠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차별이 더 두렵습니다. 그 누구도 폐렴으로 죽은 이를, 다른 감염으로 인해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생 다른 이유로 몸이 아팠던 이를, 감염되었단 이유로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손가락질을 국가기관이 나서서 자행했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차별을 멈추십시오. HIV는 더 이상 죽음의 바이러스가 아니고, 이는 온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감염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존엄을 짓밟는 것이, 질병이 아니라 차별임을 인식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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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신문 1871호 <종단횡단> 칼럼 원본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
2. 칼럼 외부 피드백에 대한 고대신문 대응 평가

고대신문에서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주셔서 답변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고문 심기용입니다.

서강대학교 춤추는Q 측에서 박성수 기자님이 메일로 보내주신 내용을 QUV로 전달하여 의견을 구하셔서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고대신문의 발전을 위하여 고생하시는 기자님의 수고에 경의를 보냅니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기 전에 우선은 혐오표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두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일단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에 대한 개인의 부정적 감정과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최근 논의되는 혐오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어떤 표현이 특정 집단의 사회적성원권을 침해하고 사회로부터 배제와 소외를 일으키게끔 하는 표현이라는 지점입니다. ‘사회적성원권이란 시민권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회구성원이 그 사회의 성원이 되기 위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시민권이라는 표현이 법적으로 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의 권리를 표현한다면, 사회적성원권은 법적으로 시민권이 없더라도 사회의 구성원인, 가령 난민과 같은 주체들도 포괄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문제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1, 칼럼에 대한 피드백

표현의 자유는 말 그대로 어떤 표현이든 표현될 수 있어야 할 자유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라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고대신문에 올라온 칼럼 역시 표현될 수 있던 것이겠죠.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매우 피상적이며 아주 중요한 논의 지점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 사회에서 왜 누군가는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말할 수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하는 주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표현이 자유롭겠습니까. 글자가 춤을 추고, 낙서가 뛰어다니고 하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려면 기계적으로 어떤 표현의 사용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표현의 주체들이 놓인 환경과 구조에 어떤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컨대 해당 칼럼조차도 사과하라며 언성을 높인 사람들의 표현을 기계적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칼럼의 결론에 의하면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하고, 이런 칼럼을 써서는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권력구조와 관계없이 다룬다면, 표현의 자유는 논의조차 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칼럼을 통해 스스로 말하고 싶었던 것도 사과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권력적이었다는 평가인 것이지, ‘모든 표현이 용인되어야 한다 아니다가 아닌 셈입니다.

한편 앞서 말씀드렸듯이 혐오표현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한 집단의 사회적성원권을 위협하고 제약한다는 지점입니다. 저는 남성이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말이 혐오표현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면 그건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판단이니까요. 그리고 이성애정상성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비판하는 이유는 이성애정상성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좋아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칼럼에서 표현되지 않은 맥락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굳이 그런 말을 했던 상황적 맥락이 혐오적이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 말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위협적이었거나 소외시키는 맥락에서 발화되었기 때문에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 사과를 요구했겠죠.

렇기 때문에 글쓴이는 사과가 강요되고 있다는 상황을 권력적인 것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문제시 된 발언이 소수자 집단을 비규범적으로 평가하고 소외시키는 권력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수자들을 주변화 시키는 말하기야말로 역설적으로, 소수자들의 (글쓴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민주 사회의 위협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고대신문 대응에 대한 피드백

고대신문의 첫 번째 사과문이 재발방지대책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던 점은 확실히 아쉬운 점입니다. 두 번째 사과문이 단지 입장 표명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대신문이 이어나가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대응은 언제나 미숙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이시되 침잠하거나 소진되시진 않으시길 바랍니다.

대응에 대한 피드백은 더 할 말이 없되, 고대신문에 당부 드리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아마 고대신문이 지금 솔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데스킹이나, 검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기사를 내고,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 사과를 한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줄 압니다. 그 자체로 기자들을 아주 크게 압박하고 위축시키는 일인 점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번 사과를 외부 압박에 대한 굴복의 의미로 내부에서 수용하지 않길 바라기도 합니다.

사회적 차별이나 혐오가 실린 글을 신문에 함부로 게시하면 안 되는 이유는 언론이 자유하면 안 되어서가 아니라, 언론의 격과 질을 낮추어 신문이 스스로 공신력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과는 단순히 어떤 칼럼을 게시했기 때문에 사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신문이 스스로 공신력과 공공성을 훼손한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 고대신문이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라는 틀에서 피상적으로 고민하기보다는 표현과 언론의 효과를 고민하고, 한편으로는 소수자에 대한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고대신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과문 내용을 미루어보아 아마 내부적으로 그런 고민이 더 깊이 진행되고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피상적인 갑론을박에 소진되시지 마시고, 대신 사회 환경과 구조 안에 있는 권력 작동을 더 비판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가는 좋은 계기가 되기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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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19.06.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읽고 몇 가지 의문점이 들어, 글 남깁니다. "누군가를 억압하는 권력 구조를 없애자"라는 취지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그 권력 구조를 없애자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권력적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구조를 이 사회는 인정해야 하나요. 덧붙여, 무엇이 권력적이고 아니고를 누가 어떤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행정팀입니다! 일전에 게시한 '단체명 변경 공지'를 통해 큐브의 공식 단체명이 변경됨을 전달해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담은 후속 카드뉴스를 제작해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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