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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무지개가 광:(光/狂)나는 밤> QUV 11대 의장 박기진 발언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제11대 의장 기진이라고 합니다.

동성애자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학생의 입학을 거부하겠다고 학칙에 명시해놓은 대학.
교내에서 무지개색 옷을 입거나 페미니즘 강연을 개최하면 학생을 징계하는 대학.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이나 현수막, 행사는 불허하는 대학.

  모두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학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대학에서든 다를 바 없이 입학 이후 새내기들이 대학과 선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도 '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는 공동체와 학교 생활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자신감을 일깨워주는 말일 것입니다. 저의 새내기 생활 역시 그랬습니다. 우리 대학은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뜻에서 설립되었다는 말들은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부푼 꿈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제 마음에 기대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에서의 생활이 긴장과 싸움의 연속이 될 줄은 그 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항상 저의 성정체성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저에 대해 제가 모르는 소문이 나는건 아닌지 신경 쓰면서, 무례한 추측과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대형강의나 학과 행사에서 성소수자와 여성, 장애인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어도 자신 있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렇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대학 본부든 교수든 학생사회든 제대로 대처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이 불어넣은 자긍심은 단 한 번도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안전한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 세상에 저 뿐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많은 대학과 지역에서 성소수자 학생과 청년이 모인 자치 모임들이 조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 내에 이러한 모임들이 조직되고 가시화되면서 이들을 향한 성소수자 혐오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숭실대, 한동대, 장신대에서 일어난 일들, 대학 본부가 나서서 성소수자 또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징계하고 인권 활동을 검열, 탄압했던 사건들을 익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만이 끝은 아닙니다. QUV에서는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 차별 사건들이 상시적으로,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최근 고려대학교 교지인 고대신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용인해야한다는 칼럼이 버젓이 기고 되어 논란이 되었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 동아리의 홍보물이 뜯기거나 짓밟혔으며, 가천대학교 본부는 오늘, 아이다호를 알리는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의 현수막 게시를 거부하고 활동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인천대학교에서는 단체의 정체가 불명하고 폐쇄적이라는 핑계로 성소수자 동아리의 중앙동아리 인준을 부결시키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QUV의 회원들은 에브리타임이라는 대학 게시판 어플에서 성소수자 정체성을 희롱하는 글들이 판을 치는 것을 지켜고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성소수자 동아리가 대학축제 때 부스를 내었더니, 그 앞을 지나가던 남학생들이 부스를 보면서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다 거르면 되겠다"라며 웃으며 지나갔다는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것이 대학이 싸움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면서 끝까지 굴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면 배척하겠다는 끔직한 태도를, 전혀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이 폭력적인 배제의 문화를 뚫고 나가, 교육공간 안에도 우리가 있고 나아가 이 사회 어디에나서나 우리가 존재함을 알릴 것입니다.

  여러분, 대학과 관련해 큐브 의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소신은 대학이 지성인의 공간이기 때문에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학의 변화를 외치는 것은 대학에도 성소수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 어느 대학도 이미 존재하는 성소수자 구성원을 자의로 배제할 수 없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은 민주주의와 사회구성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만용과 차별을 정당화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학 이념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이고 우리를 차별할 수 있어야 대학의 자율성이 지켜진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은 모두 그 댓가를 치루게 하거나, 변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대학 사회의 변화를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동성결혼 법제화, 성별정정특별법 제정, 전파매개금지조항 19조 폐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학청년 성소수자 모임들과 세상을 반드시 바꿔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