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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4월호 - 서울대학교 편

(작성자 : 모댜른)

미루고 미루던 글을 종국에는 쓰게 되었다. 자유주제임이 내게 약간의 "자유"를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런 까닭에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까 더욱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더 크다. 그에 후속되는 걱정은 과연 내가 충분한 길이로 (언제나 나는 글을 쓸 때 길이에 대해 신경 쓰게 된다. 분량 제한이 있거나 점수가 달려있는 수업제출 용 글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것이 블로그에 쓰는 글이던, 혼자서만 보기 위해 끼적이는 글이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이던, 어느 정도는 써내려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써내려간다는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내 생각들을 풀어낼 수 있을까하는 것. 퀴어, 플라이글도 써야하는데, 걱정만 많다.

 

일단 내가 QIS의 이름을 달고 글을 업로드하게 될 것을 따져보았을 때, 내가 모임에 대해 어떠한 일말의 대표성이라도 지니고 있는지 우선 생각해보게 된다.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직 내가 쓰게 되었기 때문에 내 글이 QIS의 이름을 달고 올라갈 뿐, 단지 그 뿐이다. QIS의 일원이 된 것도 이제야 6-7개월 남짓. 여기서 모임에 가입하게 된 동기나 가입 전에 내게 벌어졌던 일들이나 커밍아웃에 관한 것들을 써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내게 그런 사건들은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만 언급해두고,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겠다(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 직접 들어도 될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쓰게 될 것은 동아리 방에 앉아있는 내게 요즘에 내게 찾아오는 감상들, 단상들, 인상들이다.

 

월별로 글이 쓰이는 것인 만큼 계절의 변화 같은 시간의 흐름을 글 속에 표현하는 것이 재밌지 않을까, 앞으로 글을 쓸 분들께 살며시 제안해본다. 꽃이 정적을 깨고 피어나는 것처럼 그대의 진실한 모습을 세상에 내민 경험, 그리고 그 때 그대가 사용했던 아름다운 낱말들 / 뒷목을 할퀴는 칼날 같은 햇살을 무시한 채 연인과 간 여행, 그리고 그 때 그대가 밟았던 까슬한 모래알들 / 나뭇잎을 물들이는 색채들로 그대의 나날을 칠해주던 그 사람, 그리고 그 때 그대를 도취시켰던 달콤한 향기들 / 추적추적 오던 진눈깨비처럼 마음을 젖어들게 만들던 이별, 그리고 그 때 들었던 우산 속 공기. 이런 대상들이 큐브 페이지에 넘쳐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건 자유주제이니 말이다.

 

결국 나는 이번 글에서 QIS의 동아리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동아리방을 둘러보면서 내가 보는 것들, 그리고 듣는 것들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는 지금 이 계절에 동아리방 창문 밖을 내다보며 느끼는 것들, 그리고 그 밖의 것들과 관계하면서 내가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해볼 것이다. QIS 동아리 방 안에 앉아서 가만히 동아리 방을 둘러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동아리방을 둘러싼 벽들이다. 일단 한 쪽 벽은 현재 녹색 계통의 페인트로 칠해져있다. 원래는 일 년에 한 번 쯤 색깔을 바꾸어가며 회원들이 방학에 칠했다고 하니, 그 전에 어떤 색으로 칠해져있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벽에 붙어있는 그림들과 사진들이다. 이번 여성의 날에 캘리그래피 코너에서 받아온 응원 메시지들도 있다. 다른 쪽 벽에는 남성 몸의 데생, 그리고 레인보우 페인팅 사진들, 화이트보드 등이 있다. 이제 나는 내가 앉아있는 소파와 그 앞에 높여있는 책상들을 본다. 그 위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문구류(내가 사용하기 위해 놓아둔 연필깎이도 있다), 잡지들(Out Magazine, 동준이 커버를 장식하고 있는 멘즈헬스 등),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꽃병과 그 속에 꽂힌 꽃들(졸업식 때 사왔던 꽃다발들을 정리해서 한 회원분이 만드신 것이다), 대학교 도서관 도장이 찍혀있는 책들, 동아리 소재의 만화책들, 그리고 퀴어, 플라이, 기증받은 캐릭터 방석들 등. 주인을 예측하기 어려운 물품들도 많지만, 모두 회원들이 새겨 넣은 시간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사물함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원하는 경우 한 칸씩 사용할 수 있는 사물함이다. 그 중 몇 개는 동아리의 공적 필요를 위해 배당되었다. 응급의약품이라든지 중요문서라든지. 사물함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플라스틱 박스들이 무언가를 가득 품은 채 놓여 있다. 아마 과거에 파티를 준비할 때 사용했던 물품들이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 그 사물함 뒤에는 QIS 창립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많은 기록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벽장이 있다. 이 벽장에는 또한 과거의 퀴어, 플라이재고들, 다양한 주제의 책들, 다른 동아리의 자료, 다양한 보드게임들, 비디오 자료들(무엇이 담겨있을지 굉장히 궁금해진다. 하지만 VCR 플레이어가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지금, 그 내용을 알기는 참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바흐의 음악이 들어있는 음반도 저장되어 있다. 자료들을 자세히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QIS의 과거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글들과 사진들이 있음에는 틀림없다. 사물함 뒤로부터 나와서 나는 다시 내가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제 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날은 보드게임 도미니언을 즐기면서 떠들고, 어느 날은 수업에서 마주친 훈남 이야기를 하며 웃고, 어느 날은 그 전날에 들었던 퀴어방송 이야기를 하며 놀고, 어느 날은 찢어진 홍보물들을 보며 분노한다. 동방에서는 퀴어, 플라이필진 회의, 운영회의, 퀴어이론 세미나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이 벌어지기도 하면서, 회원들이 자신의 연애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트위터 이야기를 하며, 시험공부를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수도 있는 사적 공간이다. 이렇게 QIS 동방은 그 자체로 다채롭다.

 

이제 동아리방 구경은 충분한 것 같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동아리방의 창문 밖을 내다보고, 그곳에 있는 벚나무의 가지를 바라본다. 글을 쓰는 지금은 벚꽃이 한참 피고 난 후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꽃잎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이다. 목련도 또한 피었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초록의 형태들이 나뭇가지들에서 자신을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 나는 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라고 해봐야 식물의 생식기이라는 일종의 농담 때문인 것은 아니고, 특히 벚꽃의 경우 볼 수 있는 꽃술의 모양이 좀 징그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2호선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캔디크러시 광고 중에서 벚꽃으로 뒤덮인 것이 있는데 그 노란 꽃술들은 정말 그런 느낌을 준다. 잠깐 기억을 되짚어보니 꽃가루가 눈에 들어간 경험이 있었기도 했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 길가에 주욱 늘어서있는 벚나무들에 솜사탕 같은 덩어리가 나뭇가지들에 걸린 양, 꽃들이 허여멀건하고 종종 분홍빛깔이 눈을 간질이는 뭉게구름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솜사탕을 씹으려 들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결국 내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는 느낌이듯, 꽃들이 주는 감상을 잡으려 해봐야 결코 잡을 수 없었다. 그냥 뭔가 가벼워 보이는 것이 걸려있구나, 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이제 벚꽃의 모습은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 단수의, 모호한, 잡을 수 없던 벚꽃뭉치가 이제는 복수의, 구체적인, 심지어는 손으로 찢을 수도 있는 꽃잎들로 변해 떨어져 내리고 있다. 벚꽃의 파괴, 그리고 흩날리는 파편들. 무엇이 그 꽃잎들을 뭉치로 있을 수 있게 했었을까? 아마 꽃들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였을 것이다. 그 기대야말로 징그러운 노란 꽃술, 자그마한 꽃잎들을 벚꽃들로 보이도록 했다. 그렇게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었던 마음이 비바람 속에서 파편들로 흩날리고 있다. 나는 저 파편들을 모두 긁어모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마음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 기대감이 묶어주었던, 그리고 그 기대에 의해 (그런 색이 있다면)벚꽃 색으로 칠해지던 다양한 상황들이 이제 하나의 느낌으로 묶일 수 없게 되었다, 각각의 구체적 기억의 파편들로 조각나버렸다. 그리고 그것들은 곧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러져가고, 새 기억에 의해 밟힐 것이며, 봄비에 떠내려가 버릴 것이다. 아스팔트 도로 위 벚꽃 잎들처럼.

 

하나 잠시 내 기분은 옆으로 치워둔 채 벚꽃이 주는 감상을 되돌아보니, , 벚꽃의 단수적 덩어리가 벚꽃 잎의 다수적 분할들로 변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벚꽃의 향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봄비가 내려 꽃잎들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비가 개고 나서 벚꽃의 향은 더욱 진해진다! 기대감을 품고 머금었던 솜사탕은 내게 씹는 느낌은 주지 못하고 조각조각 스러지지만 그러면서 단맛을 내게 건넨다. 그래, 그냥 벚꽃이 벚꽃 잎들로 조각나 사라져버리게 할 수는 없지. 시간의 빗물을 따라 그냥 떠내려가게 할 수는 없어. 나는 그걸 구경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얻을 것이다, 그래 나는 벚꽃 향을 만끽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롭게 기억할만한 감각을 느낀다. 벚꽃이 주던 모호한 기분은 나를 떠났지만, 벚꽃 잎들의 흩날림과 그와 동시에 그들이 내뿜는 향, 그리고 그 잔향은 훨씬 더 오래 나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동아리방 소파에 앉아서 떠올려본 것들이다. (사실 집에서 많은 부분을 쓰기도 했지만, 동아리방에 앉아있다는 상상을 하고 써보았다.) 먼저 글을 쓰신 두 분과는 달리 내 삶의 내밀하고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시시껄렁한 수필작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이란 결국 다 이런 것들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