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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1월호 - 부산대학교 편

QIP 부산대학교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 - 마늘

 

QUV의 릴레이 연재에 QIP에서는 내가 글을 적기로 했다. 글을 쓸 일이 잘 없었는데,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평소에 적고 싶었던 글을 적기로 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젠가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날, 22살에 남자를 좋아했던 나와 커밍아웃에 대한 나의 생각을 미리 정리해두고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이 글을 먼저 보여드리고 싶어서이다.

 

이 글을 찬찬히 읽고서 당신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랍니다.

 

두 집안의 맏이끼리 결혼해서 처음으로 본 아이가 나다.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지 어림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의 배우자와 나를 닮은 아기를 갖는다는 그 기쁨을 나는 알 수 없다. 그 기쁨이 다할 때까지 아마 나를 사랑해줄 거라 짐작해본다. 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서 버팀목이 되어 줄 것도 안다. 그리고 당신의 목숨이 다 할 때까지 나를 사랑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부모, 당신들에게는 내가 세상의 빛이 되었을 것이고, 삶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물론이다. 태어나서 만난 당신들은 내 삶의 원동력이자 내가 보는 세상의 통로였다. 나의 머리가 커져감에 따라 당신들은 점점 쇠약해져 간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당신들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며, 당신들 앞에서는 유약한 존재이기만 하다. 당신들의 걱정거리인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고 무섭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세상을 살고자 노력하고 운동하고 있다. 집에는 그냥 인권동아리라고 말해뒀지만, 사실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동아리였다.

 

나는 언제나 커밍아웃하고 싶었다.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고픈 내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우리집의 모습은 언제나 보수적이고 꽉 막혀있었다. 텔레비전에 홍석천씨와 하리수씨가 나오면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욕을 하며 채널을 돌리기가 일쑤였다. , 어릴 적부터 장손, 장남이라는 말과 함께 나를 억압하던 많은 굴레들이 있었다. 그러한 행태가 나에게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고 내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당신들 또한 조금씩 변했다. 텔레비전에 홍석천씨가 나오면 욕을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내가 보겠다고 나서면 이제는 그저 욕을 하면서 보기는 본다.(가끔은 조용했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적어도 우리집에서의 큰 변화를 나는 느끼고 있다.

 

며칠 전 가족끼리 외식을 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는 내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너다. 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너가 하고픈 것을 해야한다. 아빠와 엄마의 행복은 너로부터 출발한다.”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커밍아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당장에라도 그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자립이 가능한 상황에서 커밍아웃을 하라는 말이 생각나 한 템포 참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생기거든 커밍아웃을 해야지라는 생각도 속으로 매번 다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못했다.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했던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의 입에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고 한다. 나도 당신들에게 언젠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아마 미안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짐작 해본다. 속마음을 털어 놓기 힘든 가정환경을 만든 것에 대해서 미안한 것이라면, 이제는 그런 집이 아니길 바라니 미안해하지 말고 나를 계속 사랑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다.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나를 다르게 볼 필요는 없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당신들일테고, 나를 가장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당신들일 테니까.

 

당신들이 가장 예뻐하는 아들래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