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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QUV 릴레이 성명] 모두가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QUV 릴레이 성명] 모두가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당연함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전염병으로 인한 인권 침해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질병이 가중시킨 사회적 혼란과 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위기가 지속되는 것은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개인이 생존에만 초점을 맞추며, 타인 혹은 특정 집단을 향해 거름 없는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 전염병이 더 가혹하게 다가가는 것을 목격했다. 개개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서로 같지 않으며, 현대 사회에는 아직 차별과 인권의 탄압이 자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불합리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높아지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차별금지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차별행위를 방지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사람이 사람 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에서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ㆍ예방하고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차별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적합한 처벌을 부여하기 위한 초석이 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처음 발의된 2007년 이후 10년이 넘도록 번번이 법으로공포되지 못한 채 국회의 임기만료를 이유로 폐기되어왔다. 2007년과 2013년,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이후 일부 종교계는 “성소수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법안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010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발송한 공개 질의서에 대해, 법무부는 “사회ㆍ경제적 부담이 우려된다”며 혐오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처음 발의로부터 13여 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의 기다림은 무의미하다. 제21대 국회가 구성된 지금, 페미니즘이 재부상하는 지금이야말로 평등한 한국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 때이다.

《차별금지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일부 종교계와 급진주의적 페미니스트, 반 페미니스트 등에서 특히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중심으로 반대 논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를 무조건 불가침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혐오와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개인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를 통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은 잘 포장된 위선이다. 2020년인 지금도 소수자성에 대한 불필요한 난상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논의의 장에서 등장하는 ’정상’이라는 개념은 권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무언가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또한, 개인이 제3자의 허락 하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은 단순히 모든 차별과 억압을 공고히 하고 정당화하는 것에 일조하는 주입된 사고에 불과하다. 소수자는 사회적 합의와 무관하게 역사 속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은 서로 긴밀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납작한 현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인권은 넓은 범주를 향유하며, 일부분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 해도 다른 부분에서까지 소수자로서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특정한 사건들이 발생하면 성별, 나이, 직급 등으로 단편화되어 사회를 달구곤 한다. 그러나 특수성의 복잡한 연결구조를 무시한 채로는 정확한 처벌 뿐만 아니라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 또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도록 유도 및 요청할 수 있으며, 앞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접근법으로 작용할 것이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사건 외적인 면에 집중해 형량을 줄이고,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 사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단순 여론을 통한 압박만이 아닌 법적인 압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차별금지법안》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발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6월 23일 인권위가 공개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응답자의 88.5%가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2019년 3월에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와 비교했을 때, 찬성 비율이 15.6% 높아졌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성적 지향과 정체성 항목과 관련해서도 응답자의 73.6%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고 답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위기로 인해 차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어 상황을 전복할 수 있음을 《차별금지법안》의 제정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안》이 공포된다고 해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바로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차별이 사라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상식’을 기준 삼아 살아온 이들에게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박차를 가해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이 혼돈의 상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걱정과는 달리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모든 사람은 원하는 기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개성적이거나 몰개성하다고 해서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또, 마땅히 그러한 사회로 변해야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낸 정상성의 틀을 향해 의심과 질문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이다. ‘정상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비-정상성’을 향한 거부감은 개인이 경험하는 부조리함을 권력 구조를 문제 삼기 보다는, 특정 집단 혹은 타인을 이유 삼아 혐오와 차별을 쏟아내며 이를 끊임없이 정당화하도록 만들 뿐이다. 이곳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는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불합리한 차별과 불평등에 분노하는 우리는 법을 변화시킬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부당한 대우와 언행을 경험하고도 2차 가해에 대한 불안과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에 가해자를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던 소수자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누군가에게는 선의,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목적이자 수단이다. 차별금지법은 누가, 얼마나 차별받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게끔 할 것이다. 차별이 무엇인지 소통과 이해를 통해 확인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도록 도울 것이다. 직접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가진 것만이 차별이 아님을 알게 할 것이다. 은연중에 발생하는 차별을 현명하게 대처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사회적 합의’라는 불합리하고 권력에 기반을 둔 변명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환영하며,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의 일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0. 07. 16.

숙명여자대학교 퀴어모임 큐훗 Q-HOOT X 대학ㆍ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