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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행동 논평] 성소수자 인권 보장, 다름 아닌 정부가 나서야 한다. 유엔 UPR 성소수자 인권 관련 권고 모두 불수용 결정을 규탄하며

[논평] 성소수자 인권 보장, 다름 아닌 정부가 나서야 한다.
유엔 UPR 성소수자 인권 관련 권고 모두 불수용 결정을 규탄하며

Universal Periodic Review의 줄임말인 UPR은 유엔인권이사회가 4년 6개월에 한 번 열어 전 세계 국가가 인권정책에 대하여 상호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책을 권고하는 제도이다. 이번 UPR에서 한국은 218개 권고 중 22가지의 성소수자인권 관련 권고를 모두 불수용했다. 권고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명시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군형법 제92조의 6 추행죄를 폐지하고, 국가 건물에서 전환치료 관련 행사가 열리지 않게 하라는 것이 주요골자였다. 그런데 정부는 이에 또 다시 ‘사회적 합의’을 언급하며 책임을 방기하거나 전가하는 답변만을 내놓았고, 전환치료에 대해서는 엉뚱하고 아주 문제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이 도대체 언제까지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무지한,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입장을 반복해야 하는가?

모든 입장들이 실망스럽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권고에는 “차별 금지 사유에 대한 논란(controversy)을 감안할 때 (중략)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은 상당한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사회적 합의(public consensus)가 필요합니다”라고 입장을 보였다. 논란 사유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칭하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정부는 성소수자 인권을 사회적 합의 대상으로 언급한 것이다. ‘논란을 감안하여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논의하기에 따라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사유로 인간을 차별해도 부당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말인가? 정부는 이미 몇 차례 성소수자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선언한 바 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인권차별 해소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권에 대한 정부의 마땅한 역할이고, 적극적으로 그러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나서 설득해야 한다.

한편 군형법 제92조의 6 추행죄를 폐지하라는 권고에는 “해당 사안은 일반법원과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고 정부는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준수할 것입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작년 육군이 주도하여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했던 유례없는 인권탄압 사건에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해당 사건에서 국방부가 이 법을 근거로 군인들의 인권을 유린했고, 그렇기에 이 사건에 직접적 주도자라고 할 수 있는 정부는 군형법상추행죄 폐지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UPR 답변만 보면 정부가 군형법상추행죄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방부는 군 기강을 위해 반드시 법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군기강과 동성군인 간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는 상태로, 정부는 적극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차별하는 정책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군기강은 오히려 군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심각함에도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데에서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애꿎은 곳으로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군형법상추행죄 폐지로 확고히 입장을 취해야 한다.

정부의 전환치료에 대한 답변 수준이 특히 부끄럽다. 국가 건물에서 전환치료 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권고에 정부는 “전환치료는 사적인 영역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정부가 금지하기 어렵다”고 엉뚱하고 문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전환치료는 사기행각이고, 감금과 폭행 등을 동반하는 중범죄인 점이 전세계에 이미 알려져 있다. 전환치료 과정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 전환치료 자체가 얼마나 미신적이고 근거 없는 이야긴지 정부는 제대로 인지해야만 한다. 최근 젠더폭력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에 비추어보았을 때도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이다. 가령 가정폭력에 대해 그것이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폭력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해야 함을 알고 있다. 전환치료도 마찬가지다. 특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의 사람을 성별고정관념에 맞춰 교정을 시도하는 일은 공사 상관없이 엄연한 젠더폭력이고 정부는 이를 멈추고 예방해야 한다. 사기, 감금, 폭행, 젠더폭력이 행해지는 복합범죄인 전환치료는 명백히 정부의 규제대상인 것이다.

UPR에서 꾸준히 한국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권고가 나오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비단 차별해소에 의지가 없어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다. 부처 간 인식과 감수성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성소수자 인권 분야에 무지하거나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 능동적인 정책이 없는 원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하여 전문가 및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늘려야만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원칙이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멈추지 않는다. 문제를 인식하라. 그리고 정책을 마련하라. 예산 들지 않고, 입법부를 통할 필요 없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이 있다. 예산을 이유로,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

법무부에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마련하기 위해 각 인권분야 NGO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성소수자 분야에 대해서도 무지개행동이 각 부처와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구체적인 정책 사항들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국가와 시민사회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하여 더 확대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하여 부끄러운 입장은 더 이상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하여 무지개행동은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업할 의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마련에 시동을 걸어야만 할 것이다.

2018. 03. 21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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