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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성명] 내가 마녀가 된 이유

QUVKOREA 2020. 4. 6. 23:21

[QUV 성명] 내가 마녀가 된 이유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2019년 대한민국을 돌아본다. 2019년의 봄에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다. 개인의 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침범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그 침범의 부당함을 일깨운 결정이었다. 우리는 ‘몸에 대한 침범’이 법적·제도적으로도 옹호되는 사회를 살아왔고, 그 구조적인 폭력이 명시적인 표적을 바꾸며 반복되는 역사를 경험해왔다. 그 대상은 여성이기도, 동성애자이기도, 트랜스젠더이기도, 성소수자 전반이나 젠더의 위계 아래 놓인 모두이기도 했다. 따라서 여성의 몸에 대한 검열은 성소수자의 몸에 대한 검열과 분리되어 독해되지 않는다.

  이에 여성의 몸에 대한 개입의 부당함이 법적으로 시정될 2020년의 우리는 몸에 대한 개입 전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소수자에 의해서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재생산되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 우리는 학생 A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을 보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은 강제전역 판결의 부당함을 알린 변 하사를 향한 혐오 발언을 목도했다. 이에 이어, 우리는 QUV 연대체 소속의 동료가 성 지향성을 이유로 연합 여성 운동 동아리에서 탈퇴를 강제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누군가의 성 지향성을 캐묻고, 성소수자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재단할 수 있다는 사고의 기저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무지와 혐오가 있었고, 해당 동아리의 운영진이 그 폭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위계의 근간에는 정상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의 젠더 권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폭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한편, 피해자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해 단체를 해산하며 마지막까지 계속된 그들의 몰상식한 태도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오늘 우리는 혐오의 재생산과 진정한 연대로의 발돋움 사이의 기로에서 여성의 날을 맞았다.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채택한 마녀라는 이름 앞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말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공고한 혐오 아래서 함께 고통받기 때문에 연대하는가. 사회적 약자라는 낙인 아래서의 연대는 개인이 처한 상황의 비참함을 탄로하기만 할 뿐, 계속하여 누군가를 ‘약자’로 몰아넣는 사회 구조의 붕괴를 도모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연대는 구조적 폭력 앞에 놓인 각자를 애도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특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사고의 근간에 대면하여 연대해야 한다. 자신의 불온함을 끌어안아 정상성을 요구하는 사회에 조소를 날리는 마녀, 페미니즘 내부의 성소수자 혐오에도 침묵하지 않는 마녀, 끝없는 규정의 폭력에 온몸으로, 일상으로 저항하는 마녀. 우리가 꿈꾸는 마녀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껏 불온해진 마녀로서 공고한 차별과 폭력의 구조에 대항해가자. 

“We are the granddaughters of the witches you weren't able to burn.”

-Tish Thawer, The Witches of BlackBrook

2020년 03월 08일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