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여성인가?

동국대 큗 회장 심기용

 

요즘 두 가지 사이에서 충돌을 느낀다. 한 가지는 페미니즘, 그리고 한 가지는 퀴어 이론. 사실 성평등을 지향하는 두 이름은 전혀 충돌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예민하고 첨예한 어떤 갈등 지점이 존재한다. 이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론보다도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부터 나타나는 갈등이다. 아주 최근에도 이 문제로 공동체적 갈등을 겪는 그룹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주 사소할 수 있는 부분에서, 우리의 관습과 문화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그 갈등을 질문으로 만들어 보자면 바로, “누가 여성인가?”일 것이다.

1세대 페미니즘에게 여성이란 지정성별, 또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2등 시민 정도로 차별받던 여성들은 여성의 시민권을 증진시키는 운동을 각종 방법을 통해 일으켰다. 지성성별 여성인 당사자들이 응집하여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었고 많은 희생과 투쟁 끝에 많은 국가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적어도 과거보다는 확장된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고등교육을 통해서, 또는 지금 대학가에서 배우는 것 또한 이 정도의 페미니즘 운동 또는 여성 운동이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에서 여성이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기 위해 싸워온 것 말이다.

2세대 페미니즘에 들어서면서도 시민권 확보를 위한 운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2세대에서는 권리 운동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가부장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차별적 성역할이나 성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된다. 1세대 페미니즘이 생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시민권 확보 운동이었다면, 2세대 페미니즘은 성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하는 것, 여성스러운 것, 또는 여성다운 것은 없다는 것이 2세대 페미니즘이 가장 얘기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에 이르러 3세대 페미니즘은 생물 성과 사회적 성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나아가 모든 성에 관한 범주가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여성이라는 범주 역시 구성적인 것이지 지정성별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3세대 페미니즘에 의하면 남성이란 권력적이고 국가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구조를 의미하지 실제 생물 남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 여성의 당사자 운동은 여성 당사자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직관으로부터 시작되어 어쩌면 쉽게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3세대 페미니즘에서 여성이란 남성적인 구조로부터 억압되거나 배제되는, 또는 남성적인 구조의 대안이 되는 어떤 것으로서 계속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성을 갖지 않는다. 이 때문에 3세대 페미니즘은 허황된 얘기를 하는 부류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소수자 속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트렌스젠더(그 중에서도 비수술 트렌스젠더)만 보더라도 생물 성의 절대성은 금방 와해된다. 우리가 트렌스젠더가 스스로 지향하는 성별으로서 그들을 존중할 것이라면, 태어난 성별이 절대적인 성별정체성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젠더퀴어처럼 스스로 구성해내고 발견해내는 성별을 존중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여성에 대한 지정성별 여성의 독점권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여성이라는 표현은 하나의 지표일 뿐, 직관적인 여자-여성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들과 함께 할 언어로서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이해한다. 버틀러는 오히려 재구성할 수 없는 절대적 범주를 상정하거나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자체야말로 남성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3세대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빈 내용의 표현이 되고, 권력과 게토, 폐쇄적인 구조에 반대되는 자율적인 공동체들이 구성하기 나름인 대안적인 매개체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3세대 페미니즘은 퀴어 이론 그 자체라고도 분류되기도 한다. 생물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구성되고 표현되는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재전유와 전위적 운동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세대 페미니즘은 남녀 이분법의 확고한 범주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인데, 문제는 1~2세대 페미니즘의 입장에선 퀴어의 입장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데 있다. 젠더중립 화장실, 엠티 등등에서의 젠더중립적인 방 구분 자체에도 아직까지 부정적인 입장의 여성운동가들이 꽤 있다. 아직 남녀 이분법에서 나눠진 권력 구조에서의 범죄가 없다고 할 수 없는데 그걸 바로 허물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트렌스젠더나 젠더퀴어를 포함한 퀴어 운동에서는 지정성별 여성을 타겟으로 한 여러 가지 복지 시스템들 중 일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누가 여성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소수적인 사람들을 배제하는 구조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가령 동국대 큗에서는 도리어 여성 성소수자들에게서 총학생회(이 여성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학우 휴게실 등등이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협소한 대상을 상대로 하는 복지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도대체 이 시대의 여성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번 릴레이를 통해서 다 같이 고민해봤으면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퀴어로서,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댓글로든, 개인적으로든 같이 생각을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문제로 릴레이를 계속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도대체, 여성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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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어느 오후, 사랑과 환호성, 웃음소리와 탄성이 끊이지 않는 곳 바로 옆에서는 진지와 혐오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있는 것을 보면 연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괜찮은데 너는 안돼’ 라고 말하는 모순의 최고봉, 치사함의 대가들, 그들의 집단 대장은 바로 우리가 속해있는 곳, 총신대학교다. 

그 곳에 어쩌다보니 속해진 우리들은 존재 자체가 이슈다. 단순한 인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찾으려 연신 교내를 뒤적이고, SNS를 추적하며,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댓글을 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우리들의 이야기를 내보내며, 우리들을 저격한 단독 콘서트도 만드는 것에 밥버거를 아끼지 않는다(아까운 내 등록금..). 하루하루 우리들의 인기 아닌 인기를 실감하고 있음에 감사하며 그들의 진심어린 혐오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인기쟁이가 되어버린 우리는 학교에선 이단이자, 핍박자이며, 더러운 자이고, 음행하는 자이고, 어리석은 자이며, 잡아 죽여야할 사람들로 통용되고 말았다. 우리들의 존재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고 우리는 어쩌다보니 존재를 ‘허락 맡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정작 우리는 평범하다. 똑같이 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며, 시험도 보고, 사랑도 한다. 생각보다 다들 교회에 착실히 다니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오늘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 순간, 진짜 크리스찬은 누구일까 싶다. 

‘난 동성애자를 사랑해’ 뒤에 ‘사랑하니까 고쳐줘야지’라는 폭력이 숨어있다. ‘레위기에서는 돌로 동성애자를 쳐 죽이랬잖아’‘으엑 더러워, 에이즈덩어리들!’이라는 폭언 속에 예수님은 없다. 채플 시간만 되면 여기저기서 방언이 터져 나오는 입술에서 욕설이 난무한다. ‘영원한 빛과 소금의 역할’인 총신 동산에서 ‘동성애’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 곳은 소돔과 고모라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쟁이다. 개독교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기독교로 존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자는 취지일 뿐인데, 세상은 사랑만 하기엔 각박한 세상인 것을 시간이 지나가는 만큼 가슴깊이 각인 되어간다.

그래도 우린 호모포비아로 사는 세상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우리라 믿는다. ‘혐오는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곱씹는다. 비록 우리는 징계가 무서워 뒤에서 활동하는 키보드 워리어지만, 그 작은 행동이라도 누군가에게 작은 안심이 될 수 있다면, 혹은 우리의 사랑이 전해진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 됸나 땽큼하고 카와이한 깡총깡총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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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에 관한 막연한 단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프리:즘 회원



정돈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 쓰여져 있는 것들은 최근의 생각을 짧은 글로 정리한 것이다. 사실, 근거나 대책은 없는, 막연한 직감에 가깝다.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한 부싯깃으로 쓰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이후 만남 어플, 소셜미디어의 보급 등등 포함), 미국에서의 동성혼 법제화 이후 한국의 여성 동성애자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본인이 여성 동성애자이다 보니 그 계층의 사회에 한정되는 이야기를 하는 점 우선 양해를 구한다. 여기서 분열이라는 것은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관의 괴리를 뜻한다.

스마트폰은 너무나도 간단히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는 순간에는 나도 마치 동성혼 법제화가 실현되어서 동성간의 연애 따위는 평범한 일이 된 사회에서 사는 것 같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면, 대학교의 교직원이 동성애자 학생을 처벌할 학칙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제1야당의 비대위원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둥, 두뇌가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저열한 차별 발언을 하고, 그런 발언들이 특정 계층에게 지지와 옹호를 받는 사회에 발을 딛고 있다.

이성애중심적 세계에서 동성애자 사회로 도피하는 것이야 예전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피의 방법이 즉자적이 되었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예컨대 만남 어플리케이션 이전, 또는 소셜미디어 이전 지난날의 동성애자 사회는 이성애자 사회의 시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조그만 틈새라도 마련해 물질적으로 실존했다면, 현재 2016년의 동성애자 사회는 이성애자 사회가 점유한 시공간의 차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보로 구성된 소셜 미디어 속에서 “평행하게” 존재하는 듯하다. 따라서 두 개의 차원의 사회를 합하면 전체 면적은 넓어졌을지 몰라도, 도리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이성애중심주의를 ‘밀어내는’ 동력은 약해진 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든다. 동성애자처럼 행동하기는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입는 의례가 아닌, 스마트 기기를 통한 유체이탈과 이성애중심 사회로의 귀환의 반복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동성애자 사회는 점점 실제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을 갖기보다는 막연한 데이터 (또는 정념)의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실제로 그런 변화가 있는가? 또는 그래서 뭘 어째야 하나? 는 나도 모른다.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고 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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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서울여대 성소수자 인권운동모임 SwuQ 빵상


*

며칠 , (SwuQ) 공지방에 큐브 릴레이글 참여의사를 묻는 글이 올라왔다. 나에 대한 생각이 많은 요즘, 이번이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기회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나의 회고 단상이 많이는 아니더라도 정도의 공감은 얻을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덧붙었다. 명이 나여도 되겠다ㅎㅎㅎ

*


2015년을 기점으로, 나는 이전과 다른 태도로 나를 마주한다. 이전의 나는 다소 자학적이었다. 친구들과 영화를 , 친구들은 남자주인공 이야기를 하고 나는 여자주인공 이야기를 했다. 길을 가다가, 친구들이 뒤돌아본 남자였고 내가 돌아본 여자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로 하여금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것도 줄곧 동성친구였. 동성친구에게 사랑을 느꼈다. 이에 대해, 당혹감과 죄책감을 느끼곤 했지만 성인이 되면 안그럴거라 생각하며 감정을 무마하고 회피했다. ( 소중하고 숭고한 감정을 외면한 데다 그에 죄책감까지 느꼈기에 적이 자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에 이르러서도 여전했다. 여전한 보고 불안해했다. , 동성에게서 끌림을 느끼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 무엇이 계기였는지 용기가 생겼다. 나처럼 동성에게서 연애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던 방식이 궁금했고 받아들인 후에는 어떠한 궁금했다. 그렇게, 2015 여름부터 겨울까지 몇몇을 만났다. 생각을 나누었다. 나누었던 생각들이 합쳐져 미묘하지만 변화가 되었다.


나는 이전과 다른 얼굴로 나를 대면한다. 사람들을 만나면서행복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심고 끝에 깨달은 바가 다음과 같다. 나는 여타 사람들처럼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내가 동성에게서 끌림을 느낀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자명하다. 따라서, ‘나로서 행복 지려면 나의 정체성을 행복과 유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둘을 융화시킬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을 연결 짓는 타인이나 그들 집합인 사회가 아니다. 이전엔,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 타인이나 사회에 영향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로서 행복해지는 데에 필요한 것은 나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니 이전보다 외부자극에 영향을 받고 자유롭게 되었다. ‘나의 행복 대한 심고로, 은연 중에 나를 저울질했던 잣대를 바로 보고 그것을 나와 분리시킬 알게 것이다. 조금 주체적으로 나를 바라볼 있게 됐다.


물리적으로는 이전과 변화가 없을지 모르나, 나를 마주하는 얼굴이 미묘하지만 크게 변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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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같은 , 나와 같은 .

경희대학교 Mainstream 

  • 들어가며.

 파릇파릇 봄의 기운이 올라오고, 새로운 학우들과의 시간을 시작했던 14살의 나는 타인과의 차이만을 생각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인가 꿈틀대어 나온 자발적인 생각이 아닌, 외부의 충격에 의한 타율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 같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연함을 위해선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 바치는 심연에서의 글을 모두가 함께할 있기를.


  • 그리고 이야기.

 14 이전의 삶이 별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대인들의 삶과 비스무리한 축에 속하면서 살아왔다. 다만 조금의 차이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2학년 예기치 못하게 발생했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의 성적 지향성에 대한 숙려와 함께 점차적으로 성적 지향성이 일반이 아닌 이반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이랄까. 이반이란 단어의 은유적 폭력성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했던 나에게 처음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름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예전에 해왔던 개인들만 몇몇 알고 있을 , 이젠 단체로서의 활동은 큐브와 우리 학교 동아리를 제외하고선 거의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과격했다고 해야할까. 좌우지간 그냥 나는 다름에 의해서 비롯된 인권운동을 했다. '다르기 때문에 평등을 향해 나아간다.'라고 하는 생각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색달랐고, 속에서의 문화는 여타 문화와는 차이가 있었다. 부분문화이자 반문화적이라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오래지 않아서 단체활동은 그만두었다. 성격과도 깊게 맞지 않았다고 생각도 했고,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 고입에 대한 전념에 의해서였다고 지금은 회고해본다.

 더욱 강렬했던 기억은 고등학교 정말 친밀했던 선생님께 성적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 어디선가 들었던 친구에 의해서 아웃팅당할 뻔한 기억이었다. 극구 부정으로 인해 물론 잠잠해졌지만, 당시 차이에 대한 고통과 트라우마는 굉장히 컸다. 때문이었는지 성격도 소심해졌고, 게이들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도 접하면서 이런 힘든 마음을 나누길 바랐었다.

 그리고 20, 이전의 기억들을 뒤로한 서울로 왔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게이들도 많겠다고 생각하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면서 거의 입학초기에 동아리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때도 아직은 이반(異般) 일반(一般) 차이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냥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차이성에 대한 아집을 떨쳐내게 도와준 것은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성애자인 몇몇 친구들에게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반응 없이 대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간만에 찾은 성당의 고해성사에서 "사람들의 성질은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선택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생각은 동일했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동일하며 평등하다는 , 그리고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이반이 ''이고 일반이 ''라고 했을 , 일반과 이반은 차이가 없고 모두 하나의 ()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이가 너와 같은 , 나와 같은 너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평등을 만드는 것이 아닌, 원래 천부적으로 있었던 평등을 가린 인위를 걷어내고 인지하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권운동의 방향성이 되었다. 

 모든 이는 평등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며, 평등으로 죽는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진정한 현실적인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노력의 일환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무언가를 향하든 부디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너와 같은 나", "나와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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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


719의 이야기

-       처음이다. 그래도 공군이니 사람다운 사람만 있겠지. 잘생긴 선임들 많으면 좋겠네.

-       706기 선임이 자기가 아버지 군번이라고 한다. 존나 잘생겼군.

-       주위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군대에서 로맨스가 꽃피기도 한다는데 그건 역시 휴가가 적은 육군이나 가능한 이야기인 건가.

-       706기 존귀다 진짜. 맨날 깨물어야지. X병장님 사랑해요 허억허억.

-       706기가 전역했다. 내 삶의 낙이 사라졌다.

-       730기가 들어온다고 하니 얘는 괜찮길 바라야지. 어차피 내가 데리고 다녀야 하는 애니까.

-       730기 신병이 존나 귀엽네. 몸도 좋아 보이고.

 

-       헉 몸 좋다! 운동 같이 하자고 해야지.

-       아 훈련이다.

-       ..기지방호..ㅅㅂ..짬찌들2명 보내면 또 멍청할 게 뻔하니 그냥 나랑 막내랑 나가야지.

-       들은 바로는 이번에는 기지방호를 새벽까지 한다고 한다. 그냥 둘이서 이야기나 늦게까지 해야지

-       누가 제일 좋은 것 같니? 누가 제일 싫니? 여자친구는 있니?

-       여자친구 있다가 헤어지게 되면 여러모로 힘들텐데

-       드디어 거지같았던 713이 전역했다.나도 이제 6개월밖에 안 남았군.

-       가끔씩 730이랑 뽀뽀하는 장난을 치는데 너무 좋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

-       닿았다.

-       뭔가 분위기가 야릇해질 것 같아서 더럽다는 시늉을 하고 입술을 닦았다.

-       그러고 나서도 계속 입술을 내밀고 나를 유혹하는군.

-       전역하기 전 마지막 체육대회네.막걸리랑 소주나 진탕 마셔야지.

-       아 체련복에 김치 묻었다.

-       아 취한다.

-       (기절)

 

 

 

-       누가 내 옷을 벗기는 것 같다.

 

-       어떤 놈이야!

 

-       아 우리 귀염둥이였구나.

-       근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야릇하지.

-       (필름 끊김)

 

 

 

 

 

 

 

 

 

-       키스하는 꿈 꿨다.

 

 

 

-       아 머리야.

-       당연히 안 나지.어제 그렇게 마셨는데.

-       뭔 일 있었냐?

 

-       전역이다. 730을 이제 자주 못 보는 게 아쉽네.

 

 

730의 이야기

-       743 신병이 들어와서 내가 상담했는데 다짜고짜 나보고 자기가 게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       부모님도 아시니?

 

 

 

-       그래? 내 선임 중에 719이라고 어쩌구저쩌구한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이 사람이 게이일까?

 

-       역시 뽀뽀해주는군.

 


 

 

 

 

 

 

 

 

 

 

 

 

 

 

 

 

 

730의 이야기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       타조같이 생긴 사람이 자기가 대대 으뜸병사라고 일병 될 때까지 자기 뒤만 쫓아오라고 한다.

 

-       와 여긴 헬스장도 있네!

 

-       훈련?공군인데 별 거 있겠어?

-       719이 나보고 같이 기지방호 가자고 한다...나야 뭐 거부권도 없지만.

 

 

 

-       719 (못마땅), 713…있는데 곧 헤어질 것 같습니다.

-       (…)

 

-       드디어 거지같았던 713이 전역했다.

 

-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마음이 적적한데 요즘 719가 귀엽다. 난 여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       내가 미쳤지.

-       나쁘지 않네.

-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엽네.


 

-       아싸 술이다 술!!

 

-       719는 뭘 먹을 때 잘 흘리는데 그게 또 귀엽다.

-       아 취한다.

-       719도 나름 술 세다고 들었는데 벌써 꼴아버렸네. 직감실에 데려가서 재워야겠다.

 

-       김치 국물 이불에 묻으면 안됩니다. 719 병장님. 옷 벗으십쇼.

-       갑자기 719가 눈을 떴다. 공포영환줄.

-       응 그래 나야.

-       근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야릇하지.

-       719이 두 팔을 벌리더니 안아달라는 시늉을 한다.

-       그래요, 그래. 나도 취했고, 피곤하니 잠이나 잡시다.

-       얼굴을 맞대고 누워있다.

-       입술을 내밀어 봤다.

-       한번 더 입술을 내밀어 봤다.

-       뽀뽀하려고 다가오는 순간 혓바닥을 내밀었다. 장난으로.

-       키스했다.

-       오랜만에 하는 키스라 그런지 존나 좋네여자하고 하는 거하고 별 차이 없네.

-       , 나 어제 719랑 키스한 거야?

-       719병장님 어제 기억 나십니까?

-       (다행이다)

-       아닙니다.

 

-       730이 전역한다. 부러운 새끼. 나도 1년 남았다.

 

 

743의 이야기

-       저 게이입니다.

 

 

-       , 알고 계십니다.저 남자친구도 있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시면 다 물어보십쇼. 다 가르쳐드리겠습니다.

-       가능성 꽤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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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게이에게 고하노니 사랑하며 살지어다>


LTR(Long Term Relationship)이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듣는다. 굳이 우리 말로 풀이를 해보자면 ‘장기연애’가 될 


터인데, 대체 ‘장기’라는 기간은 얼마만큼인 걸까? 육 개월? 일 년? 어쩌면 이 년? 혹자에겐 삼 개월도 충분할는지 


모른다. 쨌든 이런 장기연애가 게이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많은 이들이 장기간의 연애를 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를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내 주변의 경우만 보더라도, LTR커플은 


LTR에 대한 갈망의 정도만큼이나 드물다.


영원한 사랑을 믿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을 원하지 않을 용감한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필자도 어언 5년 


전 새내기로서의 순진한 나날을 보낼 때에는 영원한 사랑, 평생에 걸친 연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그는 나를 그 자체로 오롯이 사랑하면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로맨틱한 꿈! 그렇다. 필자는 정말로 


LTR을 원하고 있었다! 영원한 사랑의 레이스 위를 달리던 순진한 내게 어린 날의 험난한 시련들은 기어코 제동을 


걸었다. 팔랑팔랑 달리기를 멈추고 직시한 현실은 그다지 장밋빛이 아니었다.


파편적인 관계가 지나칠 적마다 마음 어딘가를 스치는 크고 적은 자괴감을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으리라. 짧은 


연애만 반복하는 나는 과연 연애무능력자인가? 이렇게 혼자 쓸쓸하고 처량하게 늙다가 부지불식간에 고독사하면 


어쩌지? 죽은 지 일 년 만에 사회복지사에게 백골로 발견된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대체 왜 오래 사랑하지 


못하는가!


진정하고, 가련한 게이들을 위해 변명부터 늘어놓고 시작하자. 첫째로, 한국은 너무 좁다. 내가 아는 한 게이는 


광활한 호주 땅에서 유학 생활 중이다. 땅이 넓은 만큼 게이도 많겠거니 싶지만, 한국에 비해 인구밀도가 굉장히 


낮은 것이 함정이다. 그만큼 게이 인구밀도도 떨어지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본인이 원하는 사람을 한 번 만나면 그 


사람과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엔 게이가 너무 많다!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종로에서 게이를 만날 수 있다. 연애까지 진행시키고 진정한 사랑까지 나아가는 건 각자의 역량이라지만 


그런 역량은 둘째치고 ‘더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의 씨앗은 시시때때로 자라난다.


둘째로, 여긴 헬조선이다. 필자 나이 또래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삼포에 오포, 심지어는 구포 세대까지 나오는 판에 진정한 사랑은 젊은이에게 있어 사치 중의 사치가 아니던가! 


결혼을 완수해야 할 목표로 삼는 일반들과는 다르게 일찌감치 국가에 의해 결혼을 ‘포기 당한’ 우리라지만, 그만큼 


각자도생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만만치 않다.


마지막으로, 이제 우린 결코 순진하지 않다. 진지한 연애였든 아니었든, 그게 깊이 팬 상처였든 아니었든.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이 변해왔다.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던지고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엄청난 초능력을 


우리는 언제부턴가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썸남 1호는 이래서 싫고 썸남 2호는 다 좋은데 이게 별로다. 좋게 말하면 


이제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주제넘게 까다로워졌다. 내가 까다롭게 썸남을 보는 만큼 썸남도 


날 그렇게 보고 있으니 될 것도 안 된다.


그래.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거 다 변명이다. ‘진짜 사랑’ 혹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허상을 아직도 놓지 못한 


우리네들의 보호 기제 말이다. 한국은 별 탈 없는 이상 앞으로 쭉 지도 상의 손톱만한 나라일 것이고, 앞으로 


우리네 인생은 몇십 년간 더 바빠질 일만 남았다. 썸남 1호의 이러이러한 단점 때문에 그에게서 돌아선다는 건 


결국 더 나은 사람, 내게 꼭 맞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 아닌가? 말로는 ‘이제 난 사랑을 


믿지 않아.’라고 단호히 선언했는지는 몰라도 사실 그 환상을 완전히 놓지 못한 것이다.


감히 지껄이는 소리지만, 세상에 운명 같은 사랑은 없다. 운명 같은 착각이 있을 뿐. 오래가는 관계를 원한다면 


사랑은 순간적으로 뇌관을 스치는, 불꽃과도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곰국 같이 우러나는 진한 노력과 


존중이어야 한다.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은 ‘이 사람보다 더 좋을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착각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조금 더 오래, 차분히, 상대를 지켜볼 줄 아는 성숙함과 인내심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세상 모든 남자를 정복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다 해도 말리지 않겠다. 나는 그것도 한 


종류의 사랑이라고 본다. 하지만 당신이 LTR을 꿈꾸고 있다면, 우리 조금 더 차분해 보자. 끈질겨 보자. 혹시 


아는가. 차분히 서로를 지켜보는 어느 사이에, 서로에게 닳고 닳아서 그는 내게, 나는 그에게, 꼭 맞는 연인이 되어 


있을지 말이다.


만 게이에게 결연히 고한다. 사랑하며 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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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컴투게더 회원인 눈썹달입니다. 한양대 하이퀴어 회장에 의해 큐브 최초로 저자까지 저격당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전 일을 미루려면 확실히 미루고 하려면 당장 해버리는 타입이라 바로바로 써버렸습니다. 저격한 사람에 대한 복수심을 가득담아 쓴 글이니 허접하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割來(할래)

 

 나는 그이 집에서 자고 일주일 넘게 열에 들떴다. 볼은 언제나 발그레했고 몸은 줄곧 녹초가 되곤 했다. 정신도 곧잘 아득했다. 그러다가 그날 이후 별안간 모든 게 공허해지고 기운이 쭉 빠져나가 몸을 못가누어 버렸다. 그러니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나 아마도 내가 강의를 빠지고 점심을 포기한 채 40원을 들고 큰 맘 먹고 창경원에 놀러갔을 때부터이지 싶다. 그날 벚나무 꽃잎이 푹푹 나렸다. 내가 열하나 적에, 고향 누이가 열여섯 생일에 해 입던 연분홍치마 빛깔이 너무나도 고와 그렇게 용심이 폭폭 났었는데 벚꽃 낙화는 그보다 더 고운 자태였다. 그러나 해진 구두 밑창 사이에 짓이겨진 벚꽃이 끼어 찌걱찌걱 떨어지질 않았다. 그게 난 너무 창피했고 그것이 병으로 도진 것이다. 도무지 말이 아니 되고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기를 맞추어 보자면 상당히 들어맞았다. 벚꽃은 썩었고 녹았고 말랐으며 해진 구두와 하나가 되었다. 내 속도 썩어 갔고 녹아갔고 말라갔지만 그이와 하나가 될 수는 없어 보였다. 그이는 결국 그렇게 창경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취미를 하나 붙였다. 토요일 낮에 점심을 거른 채, 버스비마저 아까와서 신촌서 무교동까지 걸어와, 다방에서 30원짜리 뜨거운 커피를 시키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 읽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울 올라올 때 이장 아들에게서 서너 번 입고 말았노라며 물려받은 코트를 입기에는 날이 많이 풀렸지만 이것 말고는 변변찮은 옷이 없어 그 토요일 날도 결국 그걸 걸치고 나와 다방 쇼파를 하나 차지하고서는 꼬박 두 시간 반을 때우고 있었다.

 “, 영원회귀란 결국 우리가 토요일마다 걷는 여정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어느 베레모를 쓴 사내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 상호 선배님. 웬 기척도 없이.” “왜 안했겠어. 다만 네가 너무 냉커피와 책 한 페이지에 20분을 집중하고 있기에.” “, 죄송해요, 선배님. 진짜 몰랐거든요.” “아니, 죄송할 것까지야. 봄밤인데 좀이 쑤시지 않은가? 몇 시간째 앉아있는 거야? 시장하진 않아?” “아니오. , .” 상호 선배는 토요일마다 이곳 무교동 다방에서 만나는 고향 선배인데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중학생 1학년이고 그 선배가 고등학생 2학년 시절에 같이 문학 서클을 하며 친해졌으니 아마 임오년생인가 그랬다. 이후 계속 서신을 주고받다가 내가 전기대 붙고 나서 명동이며 무교동이며 소공동이며 종로며 같이 데리고 다녔더랬다. 이후 토요일이면 왕십리서 여기 무교동까지 버스를 타고 늘 등장하곤 했다. “동기 분들은 다 어디가시고요? 왜 벌써 오셨어요?” “? 일찍 오면 안 되나? 안 그래도 내 동무 하나를 데리고 왔어. 저기 다른 친구를 만났나 보이. 여봐. 호연이, 자네 뭐하는가? 이리 오라고.” 그 사내가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나 역시 잠깐 책에서 눈을 떼고 그를 보았는데 별안간 심장이 멎을듯하였다. 나는 고향서 고등학교 2학년 되던 시절에 동무들과 함께 시내 극장 화장실 통풍구를 통해 몰래 잠입하여 <맨발의 청춘>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서두수 역을 맡은 신성일에게 홀딱 반하였다. 그런데 그 신성일을 닮은 훤칠한 미남자가 이리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마시다 남아 녹아버린 커피 잔을 못내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웬 수선인가? 간만에 만난 동무가 있어 반가이 인사 중이었구만. , 상호 자네 맞은편에 앉은 미소년자는 누구야?” “, , 인사해. 내 대학 동기 호연이야.” 나는 필시 상호 선배가 나를 부르는 것을 알았지만 굵직한 그분의 목소리까지 확인한 내 마음은 전혀 진정되지 아니했고 나는 말을 버벅일 수밖에 없었다. “, 안녕하십니까. , 반갑습니다. 저는, 아 저기 뭐지.” “, 왜 이래? 쟤는 훈이라고 하는 애야. 연대 갓 들어온 신입생이지. 일전에 말했듯이 토요일마다 같이 청계천복개도로를 거니는 동무 같은 고등학교 후배지.” “,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호연이라고 합니다. 상호랑 같이 왕십리서 대학 다니고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산보와 토론을 좋아하여 두 사람 행렬에 동참코자 왔습니다.” “어때 훈? 이 친구랑 같이 가도 되지?” “, . 저는 조,좋아요.” 나는 대답 직후에 입에서 더운 김이 팍 나왔다. 이상했다. 분명 대학 와서 처음 맞는 봄이긴 하고 내가 좋아하는 다방이긴 하고 좋은 분위기이긴 하여 기분이 늘 좋긴 했다. 하지만 이건 이상했다. 필히 기분이 좋은 편인데 가슴이 진정이 안 되고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내가 대학을 붙었던들 이리 행복했었던가 싶었다

 우선 우리는 다방을 나왔다. 그리고 상호선배와 늘 자주 가던 선술집에 들어갔다진로소주와 참새구이를 시켰다. 나는 안주는 일체 손도 아니 댄 채 속을 진정시키려 취하고자 소주만 연신 들이켰다. “훈이씨는 술을 잘 하나 보군요?” 호연이라는 이가 나에게 말을 붙였다. “. 아니오?” 당황한 탓에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 “어이쿠, 그렇다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여보게 상호 자네 후배 저 친구 귀엽구만.” “놀리지 말아. 훈이 저 친구 성화가 나면 무서워.” 분명 다 큰 사내에게 귀엽다는 말은 놀리는 것에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귀엽다는 말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살짝 작은 체격에 앳된 얼굴이라 그런 말을 들을 터이면 왠지 나를 얕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이가 말하는 것은 전혀 기분이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몽롱해졌다. 나는 본시 술을 마셔도 쉽게 티가 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훈이 자네 얼굴이 왜 이렇게 벌개져? 취했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상호 선배가 신기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 . 선배님 갑자기 덥네요. 날도 풀렸는데 코트를 껴입은 탓인가 봐요. 바깥바람 쐬고 싶어요.” “아 그럼 호연이, 우리 이제 슬슬 나가보려나?”

 처음 서울 올라와 신촌에 하숙을 잡고 짐을 풀었던 밤, 잠깐 바람 쐬러 밖에 나왔을 때의 그 밤공기는 그렇게 시릴 수가 없었다. 그 한기는 나를 위협하는 듯 온 몸 구석구석을 침투하곤 했었다. 그럴 때면 이내 삼십 초를 못 견디고 방안으로 들어가곤 했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포근했다. 캄캄한데도 이 도시의 공기가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나는 끝내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무교동 사거리로 나왔다. 상호 선배와 호연씨도 밖에 함께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무작정 동대문 방면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상호 선배가 먼저 입을 떼었다. “, 또 치열했던 일주일을 지나 청계천복개도로를 걷는 시간이 돌아왔고만.” “한밤에 도심을 이렇게 무작정 걷는 건 또 오랜만이고만 그래.” 호연 선배가 화답했다. “훈이씨와 상호 자네는 둘이 무얼 얘기 했단 말이야?” 하고 덧붙여 물었다. “그냥 뭐. 얘기할 게 뭬 없겠어? 고등학교 시절 미친개 같았던 선생이나 양친들 근황이나 내 연애 이야기나 정세 이야기나 그런 시시한 것들이지. 훈이, 안 그런가?” “. 근데 저는 안 시시했어요. 외로운 서울에 그것도 남들 다 화려한 토요일에 선배님 없었으면 이런 게 다 가당키나 해요?” “나한테 그러지 말고 여자를 만나란 말이야. 외모도 반반한 친구가 왜 여태껏 애인이 없어. 이대도 가깝겠다. 소개도 많이 들어올 터인데.” “아직 관심 없어요, 선배.” “아직 그러한 가보네 훈이. 내 더는 말 안하겠네만 그래 뭐 다 이해하지.” “그러지 말고 봄밤공기나 맡아보지 우리. 난 꽃내음도 좋지만 밤 특유의 차분한 냄새가 좋아.” 호연씨의 말에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춘 채 밤내음을 맡으며 계속 걸었다. 그 걸음이 보신각 근방에 다다를 때쯤 갑자기 상호 선배가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야. 승현이 이게 얼마만이야? 안암서 놀러왔나? 시험은 다 끝났단 말이야? 이야. 그랬구먼. 아참, 호연이랑 훈이 자네들끼리 걸어가겠는가? 난 저 친구랑 잠깐 회포를 풀어야해서.” “? 그래 그러게. 우리끼리 걷지.” 호연씨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나는 콩닥거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뭐라 말이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목청을 넘어가질 못했고 결국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어색해요? 훈이씨?” 먼저 말을 붙인 건 호연씨였다. “, 아니오. 그렇진 않은데 다만 제가 말을 먼저 걸긴 창피해서요.” “역시나 부끄럼 많이 타는 게 귀엽군요.” 나는 다시 심장이 쿵쿵거렸다. “,귀엽다는 말 하지 마세요. 저도 다 큰 남자인데.” “그랬군요. 다 큰 남자였군요. 몰랐네.”하면서 별안간 그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였다. 술이 취한 듯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흠칫 놀라 몸이 움츠러 들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걸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처음 가본 곳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오른쪽에서 어깨가 축 처진, 꾀죄죄한 여학생 뻘 되는 여자들이 쏟아져 나왔고 왼쪽에서는 원피스를 입은 채 화장이 진한 여자들이 나왔다. “청계천은 참 신기하죠. 왼쪽에는 종삼이 있고 오른쪽에는 평화시장이 있고.” 호연씨가 말을 꺼내었다. 나는 처음 듣는 말이라 물었다. “그게 다 뭐하는 곳인가요?” “종삼 몰라요? 종로 3?” “.. 거기라면 일전에 방화 보러 낙원극장에 간 일은 있어요.” “물론 극장도 있지만 종삼은 그.. 홍등가요. 동양에서 제일로 크다는 홍등가 말이에요.” “, 아이쿠. 그렇군요.” 나는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 “, 거북하오? 관심이 없어요?” “. 조금 그래요.” “허허. 오해 마세요. 홍등가 가자 그 말을 하고자 함은 아니었어요. 그냥 청계천 이곳이 기이한 곳이다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오른쪽 평화시장에는 소녀 여공들이 앞이 캄캄할 정도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주말도 없이 하루 14시간을 꼬박 미싱, 시다를 하며 허리도 못 편 채 고생을 해서 일을 하죠. 그걸로 돈을 번 자본가와 반장들은 청계천도로를 건너와 종로에서 술을 찐하게 마시고 옆에 종삼으로 넘어와 밤을 즐긴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다시 고스란히 포주에게로 가고 그 돈이 또 동맥혈마냥 전 사회에 퍼져나가요. 웃기지 않아요? 이곳 청계천에서 고생하는 것은 결국엔 다 여자요.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오. 그런데 그런 이들을 원동력으로 굴러가는 거대 도시가 바로 이곳 서울인 것 말이죠. 이게 우리 현재의 인간사고요.” 호연씨는 담담한 듯 끝까지 말을 이어나갔다. “.. 저는..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지만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 아까는 오해한 것은 아니었어요.” 한참을 듣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아니에요. 그 반응이 충분히 있을 수 있죠. 그나저나 아까 상호랑 했던 얘기 말인데, 훈이씨는 아직 이성에 관심이 없으신가보던데.” “, . 그냥 아직은 좀 그래요.” “그럼 저는 어떠십니까?” “?” 나는 정말 큰소리로 화들짝 놀랐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아이쿠, 눈이 토끼눈이 되었네요. 농담입니다. 농담. 하하하. 진짜 귀엽네요.” 나는 괜스레 심통이 났다. 뒤이어 노기 띤 목소리로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런 식으로 초면인 사람을 놀려먹는 데 취미 붙이셨나보군요.” 호연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아닙니다. , 그런 거 아니었는데, 아 정말 미안합니다.” “...” 그와 나는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청계천도로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나갔다. 그리고 곧 동대문이 나왔다. 나는 술이 아주 조금은 깨는 듯했지만 발이 너무 피곤하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시계를 꺼내보았다. , 벌써 밤 1120분이다. 큰일이 났다. 이미 버스며 전차며 죄다 끊겼고 곧 있으면 통금 사이렌이 울릴 시간이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른 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했다. 호연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 아까 일은 진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지금 보아하니 버스 시간도 다 끝난 듯 한데 집이 신촌이지요?” 나는 네에..”하고 대답하였다. “저 그럼 제가 사는 집이 요 앞 창신동인데 제 방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가시는 게.” 나는 어찌할 수 없어(당시엔 기쁜 마음이 앞서지는 않았다.) 그러자고 하였다. 동대문을 지나 우리는 인적이 드문 길을 계속 걸어갔다.

 “아까 장난으로 말한 거 미안합니다. 그런데, 진짜 저 어떠십니까?” 동대문을 지난 지 3분 정도 만에 다시 호연씨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또다시 놀랐으나 차근차근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 저 무슨 말씀이신지는 모르겠지만. , 좋은 분인 거 같아요. 정말 너무 호남형이시고 말씀도 잘하시는 것 같고. 활발하신 것 같고.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많으실 거 같고요.” “그렇군요. 사실 난 훈이씨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이건 나도 처음 겪어보는 거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가슴에서 자꾸만 열이 나고요. 사실 무슨 말을 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여태까지 훈이씨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긴장도 되고요. 이런 말하면 제가 미친 놈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첫눈에 반했습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숨이 막혔다. “혹시 시간되신다면 다음 주 일요일에 저랑 같이 창경원에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잠깐의 정적을 깨고 다시 훅하고 들어온 건 호연씨였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카바이드 등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눈앞에는 오로지 호연씨 얼굴 하나만이 보였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네에.. 그리고.. 저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러자 호연이 형은 말없이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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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성적소수자동아리 하이퀴어 대표 호년이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큐브 릴레이를 하게되서.. 참 어떤 주제로 할까 고민했었는데! 커밍아웃에 관한 주제랑 이쪽썰에 관한 주제로 글을 모아봤습니다. 참여가 저조한 관계로 글이 좀 허접하지만 이쁘게봐주세요 *^^*


제가 사실 아직 20살인데 대학교 대표가 되었어요..하하 그만큼 이쪽생활을 짧게한것도 아니고 되게 많은 사람들을 알게되었는데 사실 일반친구들도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많이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뭐어때 하는반응이지만 커밍아웃 할 당시 속내가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친구 A

떡벌어진 어깨, 여자들이 혹하는 180이상의 큰 키, 눈웃음이 매력적인 준수한 외모를 가진 내 친구는 곰같은 매력이 넘치는 친구입니다. 만나서 친구먹은지는 아직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특유의 넉살과 남을 잘 챙겨주는 세심함에서 좋은사람 이라는 것을 느꼈고, 서로 고민이 있을 때 술 한잔 씩 주고 받으며 얘길 나누며 평생갈 친구가 생겼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성친구인 덕분에 연애 상담을 할 때는 서로 애인의 입장에서 내가 모르는 남자의 속마음, 그 친구가 모르는 여자의 속마음을 얘기해 주며 남녀간 생각의 차이를 좁히려 노력했습니다.

여느때처럼 카페에 앉아 서로 연애고민상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여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고 있었을 때 , 친구가 갑작스럽게 '근데 내 애인이 남자야' 라고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에 당황해  3초간 정적이었지만, 그 이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까지 여자입장에서 연애조언을 해줬었는데 별 소용이 없었겠구나 이런' 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예전에 인터넷으로 동성애자가 쓴 글을 보며 만약 내 주위사람이 동성애자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지만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내 친구가 동성애자라니! 말도안돼!'  라며  충격에 휩싸이거나 하는 반응은 없었습니다. 무방비하게 들은 폭탄 발언이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고,당연하다는 듯이 여자친구를 전제로 조언을 했기에 그 친구에게 맞지 않는 조언을 했고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친구가 성 정체성을 알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세심한 성격에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느꼈고, 어린나이에 고민이 많았을 친구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을 용기를 가지고 제게 이야기를 해주었다는게 정말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아직은 동성애에 개방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동아리 장도 맡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그 친구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그 친구가 동성애자이던,이성애자이던간에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털어놓을 수 있고 또 가장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제 친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응원할게💕


후배 B

처음 그얘길들었을땐 이게 뭔 개소린가했는데 계속듣다보니 진실임을알수있었어요그리고...그순간에는 내가 여자들을 음흉한시선으로 바라보는것처럼 이 형도 나를음흉한시선으로바라볼까?라는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ㅋㅋ같이있다보니까 난 남자에게도 매력이 없는 애라는걸 깨달앗죠..ㅠ 진짜 처음 그소리들었을땐 충격이었어요 그당시엔 게이라는게 다장난인줄만알았죠ㅋㅋ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고나서는 이런 고백을 하고있는 형이 대단해보였어요 게이가 어떻게보면 사회적으로 안좋은인식을 가지고있는게 사실인데 자신있게 주변상황에개의치않고자신의가치관을 분명히드러내는 모습이 좀 멋졌어요 그러면서 이후에는 그런 편견이 좀 사라진것같아요


네 저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응원속에서 살고있습니다😙

다음은 동아리 부원들에게 기억에남았던 이쪽 썰에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이렇게 답변 해주셨어요 ㅎㅎ 여러분들은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동아리원A

특별하거나 재밌는 건 아닌데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진단서를 떼러 갔을 때 의사가 나한테 대학생이면 어디학교에서 뭐 전공하냐고 물어봤던 거 그때 처음으로 살면서 공부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 ㅋㅋㅋ 이거 익명이지?그니깐 그 의사가 내가 성전환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기 위해 나의 학력을 확인했다는거야

마치 내 학력이 높기 때문에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는 것에설득력을 얻었다는거지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동아리원B

얼마전, 외부 동아리에 나간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무렵에 동아리에서 엠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사람들과 친하지 않아 이 기회에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엠티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엠티날이 되어 재밌게 놀던 도중, 왠지 모르게 게이더가 돌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끼가 많아서 게이더가 돈다기 보다는 왜인지 모르게 게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밤이 되고 사람들이 슬슬 잠을 자기 시작하자 몇 명 남지 않아 더이상 술을 먹지 않고 노래를 들으며 수다를 떠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핸드폰 구경을 좋아해 그 형의 핸드폰을 보며 기종 등에 대해 물으며 깔려있는 폰게임같은 것들을 구경하고 있던 와중에, 진동이 울리고 어디선가 많이 본 어플 알림이 떴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곧 돌려주었지만 이쪽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엠티가 끝나갈 무렵, 사람이 적을 때에 그 형의 번호를 받아서 돌아오는 길에 카톡을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 프로필 사진 얘기에서 시작한 대화는 여러 주제로 이어지게 되었고, 저는 저도 커밍아웃을 할 작정으로 슬슬 떠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있냐는 그 형의 물음에 애인이 없다고 대답을 하고, 그 형에게도 (여자친구 있냐는 질문이 아닌) 애인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리그오브레전드 얘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 형이 자신이 탑신병자(탑 라인만 가는 사람)라고 하자 장난스레 '맨날 탑만 가네. 바텀도 가끔 해야지'라는 식의 농담도 던졌습니다. 그 형은 매우 당황을 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와중에 진담반농담반으로 내일 만날래?라고 물어본 말이 씨가 되어 게이트아닌 게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놀고 밥도 먹고 간단히 술도 먹는 와중에도 전혀 이쪽에 대한 얘기는 서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내심 답답했던 저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잠시 그 형의 핸드폰을 달라고 한 후 세상물정모르는 얼굴로 이쪽 앱을 보여주며 이 앱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당황하며 지워야 되는 걸 까먹고 있었다고 대답한 그 형은 근데 너도 그렇지 않냐고 물었고 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이후로 카톡으로 얘기를 하며 서로 신기해하고 서로 자신의 게이더에 대해 뿌듯해하게(?) 되었습니다.

엠티에서 거의 처음 만나 빠르게 친해지고 서로 커밍아웃(아웃팅인가..)을 한 이후에는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보지는 않겠지만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에서 밝게 받아들여 주고 갑작스런 게이트 신청에도 흔쾌히 수락해 서로에 대해 더욱 많이 알 수 있게 해주어 고맙고 사...사...... 살아있긴 하련지


동아리원C

2014년 여름, 열다섯번째 퀴어 퍼레이드에서 우린 땡볕에서 혐오세력과 대치를 했고 결국 저녁에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트럭 뒤에 붙어 신촌 일대 거리를 행진하는데 생각치도 못한 경험을 했다

우릴 향해 힘내라며 말해준 횡단보도 앞 일반 커플부터 시작해서 버스 정류장에서 환호해준 사람들, 그리고 일부러 차창을 내려 손을 흔들어준 사람들, 행진 루트에 있던 행인들과의 하이파이브까지 여러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내 존재를 알릴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 순간엔 정말 행복했었다


네 이렇게 답변을해주셨어요!ㅋㅋㅋ 동아리원들이 서툰 글쏨씨로 얘기를 해주셨는데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네요ㅎㅎ..


이상 한양대학교 성적소수자동아리 하이퀴어였습니다!! 재미있게봐주셔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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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울시립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μεταFiX(메타픽스)’의 부장 ○○○입니다. 동아리명을 듣고 백이면 백 물어보는 질문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일까요? 부원들도 잘 모르는 메타픽스의 뜻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메타픽스는 희랍어 접두사 μετα를 영단어 fix에 접합시킨 것입니다. 사실 형태적으로도 그렇고 발음도 그렇고 희랍어 μεταφυσική(metaphysics, 형이상학)의 짝퉁 단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로 메타픽스는 고정된 무언가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메타픽스이 녀석이 저희 동아리의 이름으로 쓰인지도 15년차입니다. .. 동아리가 문을 닫았던 2013~2014년 여름방학 사이의 기간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13.5년 정도 쓰였군요. 이번 시간에는 μεταFiX라는 말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고 이 말의 형태와 의미에 대하여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여 현재 메타픽스의 위치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는 구라고, 지난 한 달간 부원들을 대상으로 자유주제로 백일장(을 가장한 직무 떠넘김)을 열었습니다. 이제 생글·파릇한 15학번 새싹채소들에게 바통을 넘기며, 저 같은 방사능 맞은 시금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귀엽게 봐주세요.(환영의 박수 짝!!!!!)

 

1. 나는 웃기게도 중2 , 야동도 본적 없던 때타지 않고 순수했던 때에 성관련 매체로서 팬픽을 가장 먼저 접했다.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던 그녀들의 연애와 섹스는 어린 나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때 나에게 꿈이 생겼다. “나는 기필코 레즈비언이 되리라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발상이지만 난 그 때 누구보다 진지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레즈비언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누군가의 사진이 올라오고, 부치·팸 하며 서로의 짝을 찾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자에게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던 것인지 해당 카페가 갑자기 자살카페로 바뀌어버리더니 사람들이 있을 공간이 사라졌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나는 그 중 몇몇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거의 모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가 속해있었던 레즈비언 커뮤니티들의 특징들을 다 적어보려고 한다.

 

카페: 는 네이버와 다음으로 나눠서

네이버의 카페들은 보통 가입절차가 단순하며, 회원 중에는 어린애들이 많아, 정신없는 카페가 대부분이다. 아웃팅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레즈비언 커뮤니티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체성고민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카페들의 가입조건은 꽤나 엄격하다. 또한 카페 내에는, ㅇㅇㅋ라는 카페에서 내가 활동정지를 3번 당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다른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서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이상한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었다. 다른 어떤 카페는 관리자가 귀차니즘 말기였다. 사실 카페디자인은 아직도 변함없이 촌스러우며, 밤만 되면 성상담소 게시판에 폰섹스를 하기위한 글들이 가감 없이 올라오지만 어떤 제재도 없어서 욕불 L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되어준다. 카페의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은 감수성 터지는 글이나, 애인을 찾는 글들로 가득하고, 얼굴을 평가해달라는 관심종자들도 몇몇 있었다. 나름 재밌다.

 

페이스북 그룹: 은 요즘 엄청 핫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이스북 특성상 10, 20대들이 대부분이며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다. 모두 비밀그룹이어서 아웃팅 걱정은 한 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페이스북 계정까지 이쪽들에게 공개해버리는 익명성이라곤 없는 공간이다. 또한 그룹에 사진을 올렸다 하면 여기저기서 친추가 오는데, 내 모든 걸 공개하는 기분이라 썩 내키진 않았다. 게다가 나중엔 지들끼리 너무 친해서 보다보면 외로웠다. , 초대를 받지 못하면 가입하지 못한다. 별로다. 노잼.

 

트위터: 몰라서 안 하고 있었는데 시작하고 나서는 빠져들었다. 마성의 세계다. 트위터에는 정치인, 연예인, 오덕, 퀴어 만 있는 것 같았다. 익명성도 보장되고 아웃팅 위험도 웬만하면 없는 듯. 트위터를 할 때는 이상하리만큼 수위 높은 발언이나 오덕스러운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미쳤나보다.(마치 몰랐다는 듯이 뭘 그리 새삼스럽게:부장) 각 대학별 퀴어 동아리들이나 인권연대 등 다양하게 퀴어 관련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시립대계정도 있으니 팔로우, RT부탁드립니다.)깨알홍보(깨알홍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계정ID 잊어먹어서 로그인 안 된다며--:부장) 근데 이상하게 트위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웬만하면 오프라인상의 지인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요즘은 커밍아웃보다 트밍아웃이 더 어렵더라. 팔로워가 적으면 혼잣말하는 기분이 들긴 했다. 그래도 뭐 트친소 같은 계정이 있으니까. 재밌다. 니냐니뇨

 

오프라인: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봤는데ㅋㅋㅋㅋㅋㅋ 하루는 종일 카페와 클럽 등을 탐방하는데 시간을 전부 쏟았다. 그 중 대표적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성신여대 근처에 마치 게이빈 처럼 L들이 몰리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촌스러운 감옥 콘셉트에 어두운 분위기의 카페인데, 주말이면 미성년자들로 풀방이었다. 그곳 죽순이들은 커서 난리 나는 클러버들이 될 것 같았다. 흡연실에서 페북 그룹에서 본 십대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가부장적 부치가 기어 나오려 했다. 갈 곳이 못 된다.

레즈비언 술집들은 홍대에 꽤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레즈비언들을 위한 술집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면 얘기가 달라졌다. 잘생기고 예쁜 여자들이 은근히 많았고 술집 분위기도 나름 좋았다. 홍대 놀이터 좌우로 내가 자주 갔던 곳이 있었는데, 좌측 술집은 민증 검사를 안 하는 걸로 알고 있고 어려보이는 애들이 간간히 보였다. 그런데 좌측 술집이 안주가 더 맛있다.

클럽 역시 주로 홍대에 터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가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 사실 놀 수가 없다. 음악이 똥 구리다. 그냥 비주류 인기차트 느낌이다. 그래서 결국 일반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일반클럽에 가면 맨 앞 무대로 뛰어간다. 그래야지 남자들에게 방해를 덜 받기 때문이며 무대 위는 여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레즈클럽을 경험할 수 있다!

아 그래 이 모든 커뮤니티사람들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퀴어축제인것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퀴퍼야말로 대명절ㅋㅋㅋㅋㅋㅋㅋ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공감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들 모두 나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본인과 비슷한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선 흥미롭다. 호기심 때문인지 아직도 계속해서 여기저기 발을 들이게 된다. 와 뭐라고 이제야 끝내지 지금 새벽두시다 잘자요❤️

 

2. 때는 내가 일곱 살일 때쯤이었다.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는데 가루몬이 나왔다. 가루몬은 푸른 색 털을 지닌 개같이 생긴 디지몬이었다. 그 때 가루몬이 너무 멋있었다. 가루몬의 카리스마, 남성미, 희생정신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릴 때부터 쭉 부모님과 함께 성당을 다녔던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를 했다. 주님의 기도를 외우고, ‘가루몬이 나타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1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굉장히 소심한 소년이었다. 당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에는 K.D. 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안경을 썼고, 키는 작지만 체격이 다부졌다. 생긴 게 약간 금붕어를 닮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훤칠하게 생긴 친구였다. 나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반면 그는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나는 하교할 때는 종종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떤 날은 그의 집에서 놀고, 어떤 날은 배웅만 해주고서 길을 되돌아갔다. 내가 나온 중학교가 있던 동네가 촌이라서 주변에 논이 많았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햇볕이 뜨거울 때나, 시멘트 도로에서 양 옆에 논을 끼고 그와 함께 터벅터벅 걸어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을 때고 있었다. K.D.와 잘 어울리는 다른 친구들한테 그와 놀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졌는데, 복도에서 만나서 인사를 했을 때 K.D.가 못 보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날은 되게 우울했다. 내가 왜 인사 안 받아줬냐고 묻기 위해 전화 걸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단순한 호감이었던 것 같고, 그는 일반이기에 감정까지는 갖지 않았던 것 같다.(사실 내가 그 때 까지는 꽤나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에 K.D.의 부모님께서 그에게 나와 같이 다니라 장려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졸업을 하고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고1일 때였다. 나는 개방적이고 믿을만한 여성 담임선생님께 커밍아웃을 했다. 왜냐하면 우리 반 애들이 너무 다 잘생겨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무척 소심했다. 반 친구들이 나를 포섭하려고 굉장히 말을 많이 걸고, 챙겨주려 하였으나 나는 줄곧 그들을 피하곤 했다. 여하튼, 나의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께서는 정말 표정 1도 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이런 것도 이겨내 보아야 한다. 노력하렴.”라고 말씀하시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상위 10대 대학에는 모두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다. 네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얼마나 깨어있고, 이해심 있는가에 따라 동아리가 있단다. 그러므로 열공하렴!” 나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지만, 덕분에 애들과 즐겁게 지내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은 나에게 너무 길었고, 3때 일반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그 애는 K.D.를 닮은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안경이 잘 어울리고, 말을 걸면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뇌가 섹시한 애였다. 괜찮은 아이였다. 물론 나는 당연히 차였다. 그리고는 너무 슬퍼서 네이버 지식인에 제가 게이라는 게 정말 싫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 후 고1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시립대에 들어왔다. 나는 꿈같은 대학에 들어와 즐거워하며, 구글링을 하여 메타픽스를 알게 되고 가입을 했다. 하지만 K.D.와 닮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K.D.처럼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 K.D.를 닮은 사람만 고집하는지는 모르겠다. FT아일랜드가 부릅니다. “남자의 첫사랑 무덤까지 간다어플을 설치했다. 어플을 설치하고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오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8분을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대화를 했었다. 8분을 만날 때 대체로 건전하게 놀았지만, 가끔 룸술집에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어장에 집어넣으려는 사람도 있었고, 여러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고, 짝 찾기 정말 힘들다고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금사빠도 아니고, 또한 내가 호감있는 분들도 뒤이어 연락이 잘 안되거나 안했기에 사람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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