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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성명, 논평, 발언문

[서울대학교 QIS] QIS는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QIS는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 (QIS, 큐이즈)입니다. 사실 어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어떤 말이든 해야한다고 느껴 글을 썼고, 날이 밝기 전 인쇄해 줄 인쇄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제의 일을 설명하기에 말과 글은 소박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김보미 씨는 우리가 아는 가장 당차고 멋진 사람입니다. 그런 보미 씨가 커밍아웃을 결심하였다고 말했을 때, 넘어야 할 두려움과 모아야 할 용기를 잘 알기에 오히려 말을 더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한 후 김보미 씨는 후련해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울기도 했을 겁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잠깐 동아리방에 들러 회원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은 보미 씨가 "모두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거에요."라고 말했을 때, 저도 사실은 울컥했습니다. 우리가 스누라이프와 SNS를 드나들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이 감정 때문이었을 겁니다.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축하합니다. 두려움을 초월한 용기를 내었고, 모두의 축하를 받는 보미 씨가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보미 씨의 멋진 결단은 분명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겠죠. 그런데 QIS는 축하로도, 감사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활기차고 사려깊은 보미 씨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와 우리 모두의 삶을 바꾸는 데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김보미 씨 혼자서 져야 하는 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김보미 씨가 만들어내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QIS의 공식입장서의 제목은 "QIS는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축하와,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성명서를 공개합니다. 감사합니다.

QIS는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은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성적지향 또는 성별정체성이라는 비밀을 밝히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커밍아웃은 듣는 사람의 놀라움을 수반합니다. 몰랐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갈등하고, 대화하며, 서로의 맥락을 배워갑니다. 커밍아웃은 “나는 성소수자”라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 이 끝없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두렵고 귀찮을 이 과정을 굳이 거치겠다는 결심의 이면에는 상호간의 신뢰와 기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5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김보미 씨가 어제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김보미 씨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랄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QIS의 회원이고, 많은 회원들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은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으면 의문 없이 성소수자가 아닌 것으로 간주됩니다. 성소수자로 인지되기 위하여는 이 무심한 단언을 거슬러 선언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QIS의 한 회원이,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라는 암묵적인 요구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결의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발견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 선언으로 QIS의 회원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녀의 결심 이면에 자리한 신뢰와 기대로 보아, 이 감탄과 흥분이 서울대학교의 성소수자들만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고도 믿습니다.

1995년 창립된 이래 20년간 QIS는 성소수자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은 희미했을 뿐입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선언한 학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금 돌아보면, 서울대학교에서 성소수자는 혹시 모를 가능성, 뒷소문, 스누라이프의 익명 사용자, 밤중에 배포된 ‘퀴어, 플라이’와 대자보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통해 우리는 서울대학교에 이토록 많이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얼굴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또 하나 가지게 된 이 얼굴이 그토록 드문 것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이 왜 총학생회 선거 정책간담회에서 언급되어야만 하냐고 물을 지도 모릅니다. 50여년을 이어온 서울대학교 학생사회에서, 모든 학생 대표자 후보가 비트랜스젠더 이성애자였으리라는 가정이야말로 비현실적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후보는 없었습니다. ‘평등’이 진정 서울대학교의 학생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우리는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말하지 않은 후보자가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도 공평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기에, 굳이 말하지 않음은 성소수자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기에, 이 선언은 학생사회에서도 의미를 가집니다.

QIS는 총학생회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조직이 아닙니다. 김보미 씨의 당선을 위해 활동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이 선언이 총학생회 선거에 있어서는 ‘별 일 아닌’ 일로 남는 것입니다. 창립 이래 QIS는 존재의 의의를 상실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왔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혐오와 차별, 낙인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성소수자들이 굳이 쉼터를 찾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편할 수 있다면, QIS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동아리가 될 것입니다. QIS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특별한 호오나 편견을, 제도적 불이익과 탄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한 사람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김보미 씨는 레즈비언이지만, 레즈비언이라는 단 한 가지 사실로 그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총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김보미 씨는 커밍아웃 선언과는 별개로, 선거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과 행적을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QIS는 그녀의 커밍아웃을 통해 우리 모두가 확인하기를 바랍니다.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어떤 사람이 성소수자라고 하여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해가 서쪽에서 뜨지도 않을 것이고, 가정이, 학교가, 사회가, 나라가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란 점을.

이러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은 특별한 사건이 될지도 모릅니다. 바다 건너 어떤 나라의 해프닝이거나 음지의 성적 존재로만 인지되어 온 성소수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 안에서도 얼굴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놀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혐오를 표출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김보미 씨의 선언으로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성소수자라는 사실의 선언이 아무 것도 바꾸어놓지 않는 세상으로의 변화,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라는 문장이, 적어도 또렷한 얼굴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세상으로의 변화. QIS는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이 불러올 이 변화를 함께 맞이할 것입니다. 김보미 씨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Queer In SNU (QIS)



*디테일 선본 김보미 정후보 커밍아웃 (기조연설문 전문)(서울대저널) http://www.snujn.com/news/16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