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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7월호 - 서울시립대학교 편

0. 서울시립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μεταFiX(메타픽스)’의 부장 ○○○입니다. 동아리명을 듣고 백이면 백 물어보는 질문 그게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일까요? 부원들도 잘 모르는 메타픽스의 뜻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메타픽스는 희랍어 접두사 μετα를 영단어 fix에 접합시킨 것입니다. 사실 형태적으로도 그렇고 발음도 그렇고 희랍어 μεταφυσική(metaphysics, 형이상학)의 짝퉁 단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고로 메타픽스는 고정된 무언가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메타픽스이 녀석이 저희 동아리의 이름으로 쓰인지도 15년차입니다. .. 동아리가 문을 닫았던 2013~2014년 여름방학 사이의 기간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13.5년 정도 쓰였군요. 이번 시간에는 μεταFiX라는 말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고 이 말의 형태와 의미에 대하여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하여 현재 메타픽스의 위치를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는 구라고, 지난 한 달간 부원들을 대상으로 자유주제로 백일장(을 가장한 직무 떠넘김)을 열었습니다. 이제 생글·파릇한 15학번 새싹채소들에게 바통을 넘기며, 저 같은 방사능 맞은 시금치의 글을 마치겠습니다. 귀엽게 봐주세요.(환영의 박수 짝!!!!!)

 

1. 나는 웃기게도 중2 , 야동도 본적 없던 때타지 않고 순수했던 때에 성관련 매체로서 팬픽을 가장 먼저 접했다. 내가 사랑하고 동경하던 그녀들의 연애와 섹스는 어린 나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때 나에게 꿈이 생겼다. “나는 기필코 레즈비언이 되리라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발상이지만 난 그 때 누구보다 진지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레즈비언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누군가의 사진이 올라오고, 부치·팸 하며 서로의 짝을 찾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자에게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던 것인지 해당 카페가 갑자기 자살카페로 바뀌어버리더니 사람들이 있을 공간이 사라졌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나는 그 중 몇몇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거의 모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내가 속해있었던 레즈비언 커뮤니티들의 특징들을 다 적어보려고 한다.

 

카페: 는 네이버와 다음으로 나눠서

네이버의 카페들은 보통 가입절차가 단순하며, 회원 중에는 어린애들이 많아, 정신없는 카페가 대부분이다. 아웃팅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레즈비언 커뮤니티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체성고민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카페들의 가입조건은 꽤나 엄격하다. 또한 카페 내에는, ㅇㅇㅋ라는 카페에서 내가 활동정지를 3번 당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다른 사람들의 흐름에 맞춰서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이상한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었다. 다른 어떤 카페는 관리자가 귀차니즘 말기였다. 사실 카페디자인은 아직도 변함없이 촌스러우며, 밤만 되면 성상담소 게시판에 폰섹스를 하기위한 글들이 가감 없이 올라오지만 어떤 제재도 없어서 욕불 L들에게 유익한 공간이 되어준다. 카페의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은 감수성 터지는 글이나, 애인을 찾는 글들로 가득하고, 얼굴을 평가해달라는 관심종자들도 몇몇 있었다. 나름 재밌다.

 

페이스북 그룹: 은 요즘 엄청 핫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이스북 특성상 10, 20대들이 대부분이며 예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다. 모두 비밀그룹이어서 아웃팅 걱정은 한 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페이스북 계정까지 이쪽들에게 공개해버리는 익명성이라곤 없는 공간이다. 또한 그룹에 사진을 올렸다 하면 여기저기서 친추가 오는데, 내 모든 걸 공개하는 기분이라 썩 내키진 않았다. 게다가 나중엔 지들끼리 너무 친해서 보다보면 외로웠다. , 초대를 받지 못하면 가입하지 못한다. 별로다. 노잼.

 

트위터: 몰라서 안 하고 있었는데 시작하고 나서는 빠져들었다. 마성의 세계다. 트위터에는 정치인, 연예인, 오덕, 퀴어 만 있는 것 같았다. 익명성도 보장되고 아웃팅 위험도 웬만하면 없는 듯. 트위터를 할 때는 이상하리만큼 수위 높은 발언이나 오덕스러운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미쳤나보다.(마치 몰랐다는 듯이 뭘 그리 새삼스럽게:부장) 각 대학별 퀴어 동아리들이나 인권연대 등 다양하게 퀴어 관련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시립대계정도 있으니 팔로우, RT부탁드립니다.)깨알홍보(깨알홍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계정ID 잊어먹어서 로그인 안 된다며--:부장) 근데 이상하게 트위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웬만하면 오프라인상의 지인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 요즘은 커밍아웃보다 트밍아웃이 더 어렵더라. 팔로워가 적으면 혼잣말하는 기분이 들긴 했다. 그래도 뭐 트친소 같은 계정이 있으니까. 재밌다. 니냐니뇨

 

오프라인: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봤는데ㅋㅋㅋㅋㅋㅋ 하루는 종일 카페와 클럽 등을 탐방하는데 시간을 전부 쏟았다. 그 중 대표적인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성신여대 근처에 마치 게이빈 처럼 L들이 몰리는 카페가 하나 있었다. 촌스러운 감옥 콘셉트에 어두운 분위기의 카페인데, 주말이면 미성년자들로 풀방이었다. 그곳 죽순이들은 커서 난리 나는 클러버들이 될 것 같았다. 흡연실에서 페북 그룹에서 본 십대들이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가부장적 부치가 기어 나오려 했다. 갈 곳이 못 된다.

레즈비언 술집들은 홍대에 꽤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레즈비언들을 위한 술집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면 얘기가 달라졌다. 잘생기고 예쁜 여자들이 은근히 많았고 술집 분위기도 나름 좋았다. 홍대 놀이터 좌우로 내가 자주 갔던 곳이 있었는데, 좌측 술집은 민증 검사를 안 하는 걸로 알고 있고 어려보이는 애들이 간간히 보였다. 그런데 좌측 술집이 안주가 더 맛있다.

클럽 역시 주로 홍대에 터를 잡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가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다. 사실 놀 수가 없다. 음악이 똥 구리다. 그냥 비주류 인기차트 느낌이다. 그래서 결국 일반클럽으로 향하게 된다. 일반클럽에 가면 맨 앞 무대로 뛰어간다. 그래야지 남자들에게 방해를 덜 받기 때문이며 무대 위는 여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레즈클럽을 경험할 수 있다!

아 그래 이 모든 커뮤니티사람들을 다 볼 수 있는 곳은 퀴어축제인것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퀴퍼야말로 대명절ㅋㅋㅋㅋㅋㅋㅋ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공감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들 모두 나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본인과 비슷한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선 흥미롭다. 호기심 때문인지 아직도 계속해서 여기저기 발을 들이게 된다. 와 뭐라고 이제야 끝내지 지금 새벽두시다 잘자요❤️

 

2. 때는 내가 일곱 살일 때쯤이었다.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는데 가루몬이 나왔다. 가루몬은 푸른 색 털을 지닌 개같이 생긴 디지몬이었다. 그 때 가루몬이 너무 멋있었다. 가루몬의 카리스마, 남성미, 희생정신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릴 때부터 쭉 부모님과 함께 성당을 다녔던 나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를 했다. 주님의 기도를 외우고, ‘가루몬이 나타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1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굉장히 소심한 소년이었다. 당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에는 K.D. 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안경을 썼고, 키는 작지만 체격이 다부졌다. 생긴 게 약간 금붕어를 닮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훤칠하게 생긴 친구였다. 나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반면 그는 걸어서 등하교를 했다. 나는 하교할 때는 종종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떤 날은 그의 집에서 놀고, 어떤 날은 배웅만 해주고서 길을 되돌아갔다. 내가 나온 중학교가 있던 동네가 촌이라서 주변에 논이 많았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햇볕이 뜨거울 때나, 시멘트 도로에서 양 옆에 논을 끼고 그와 함께 터벅터벅 걸어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싫을 때고 있었다. K.D.와 잘 어울리는 다른 친구들한테 그와 놀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졌는데, 복도에서 만나서 인사를 했을 때 K.D.가 못 보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날은 되게 우울했다. 내가 왜 인사 안 받아줬냐고 묻기 위해 전화 걸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단순한 호감이었던 것 같고, 그는 일반이기에 감정까지는 갖지 않았던 것 같다.(사실 내가 그 때 까지는 꽤나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에 K.D.의 부모님께서 그에게 나와 같이 다니라 장려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졸업을 하고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고1일 때였다. 나는 개방적이고 믿을만한 여성 담임선생님께 커밍아웃을 했다. 왜냐하면 우리 반 애들이 너무 다 잘생겨서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무척 소심했다. 반 친구들이 나를 포섭하려고 굉장히 말을 많이 걸고, 챙겨주려 하였으나 나는 줄곧 그들을 피하곤 했다. 여하튼, 나의 말을 들은 담임선생님께서는 정말 표정 1도 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이런 것도 이겨내 보아야 한다. 노력하렴.”라고 말씀하시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상위 10대 대학에는 모두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다. 네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이 얼마나 깨어있고, 이해심 있는가에 따라 동아리가 있단다. 그러므로 열공하렴!” 나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지만, 덕분에 애들과 즐겁게 지내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3년은 나에게 너무 길었고, 3때 일반에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그 애는 K.D.를 닮은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안경이 잘 어울리고, 말을 걸면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뇌가 섹시한 애였다. 괜찮은 아이였다. 물론 나는 당연히 차였다. 그리고는 너무 슬퍼서 네이버 지식인에 제가 게이라는 게 정말 싫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 후 고1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시립대에 들어왔다. 나는 꿈같은 대학에 들어와 즐거워하며, 구글링을 하여 메타픽스를 알게 되고 가입을 했다. 하지만 K.D.와 닮은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K.D.처럼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안경이 잘 어울리는 사람, K.D.를 닮은 사람만 고집하는지는 모르겠다. FT아일랜드가 부릅니다. “남자의 첫사랑 무덤까지 간다어플을 설치했다. 어플을 설치하고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오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8분을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대화를 했었다. 8분을 만날 때 대체로 건전하게 놀았지만, 가끔 룸술집에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어장에 집어넣으려는 사람도 있었고, 여러 사람이 있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고, 짝 찾기 정말 힘들다고 느끼는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금사빠도 아니고, 또한 내가 호감있는 분들도 뒤이어 연락이 잘 안되거나 안했기에 사람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