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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언론보도

하루아침에 쫓겨난 성소수자 동아리, 무엇이 문제인가

하루아침에 쫓겨난 성소수자 동아리,

무엇이 문제인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3368

이하 기사 전문

 전북대 사과대 학생회 페이스북 갈무리

아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오랫동안 내가 친구들과 하는 대화나 혹은 전화 통화를 들어왔다면, 내가 평생 한 명의 여성만을 좋아하고 사귀어 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나 수지를 좋아하나봐', '수지는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수지랑 헤어질지도 몰라'라는 말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 '수지'들은 각자 다른 이름을 가진 복수의 개인들이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태어나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남성들이였다.

이쯤 되면 내가 왜 이런 해괴한 일을 하고 다녔는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성적 지향이 실수로라도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려왔다. 그렇다고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리하여 내가 고안해낸 방법은 성별이 여성이라고 추측하기 쉬운 이름으로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지하철에서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수지'를 찾아왔다. 물론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는 그러지 않지만, 일요일 오후 카페에서 신나게 연애 이야기를 하다 막 교회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등장하면 심란한 마음이 든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성소수자에게 공간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가령 성소수자 단체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방문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자주 돌아오곤 한다.

아마 우리 사회의 모든 공간이 단체의 사무실처럼 자유로워지는 게 이상적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올 때까지, 성소수자 공동체와 그들의 독립된 공간은 특히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개인들이 숨을 틔우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단과대학 운영위에서 전북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열린문'의 동아리 등록이 취소되고 이들이 사용하던 공간에서 나가게 된 사건이다. 이에 대한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내일로'(아래 사과대 학생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동아리방은 사회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동아리 구성원이 사회대 학생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열린문 측이 제출한 서류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애초 요구한 서류의 양식, 즉 '동아리의 등록 요건인 서명 회원 20인의 명단'에는 동아리 구성원들의 이름과 성별, 주거 형태와 전화번호를 적는 항목이 있었다. 말하자면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이는 동아리의 회원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 명단을 달라고 한 셈이다.

커밍아웃은 당사자의 선택이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동아리 활동과 공간 사용의 조건으로 사실상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그들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불평등한 조치임과 동시에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거기에 사과대 학생회가 수집한 정보를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며 언제 파기할 것인지 제대로 된 안내가 있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열린문 측에서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열린문 측이 10일 낸 입장문에 따르면, 이들은 직접 행정실 담당자와 면담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행정실 담당자가 '열린문 회원들의 개인정보 제공을 학생회 쪽에 요구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동아리가 성소수자 당사자 모임임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이고, 성소수자에게 자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인권 침해임을 파악한 후에는 사과대 학생회 측에 이름의 성과 전화번호만 기재한 대체 서류를 달라고 요구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행정실 담당자와 학생회장, 열린문이 참석한 삼자대면에서 담당자가 "열린문의 경우, 이름의 성과 전화번호만 적은 명부를 행정실로 바로 제출하라고 전달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학생회장은 "전달받았습니다"라고 답변하기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과대 학생회는 입장문에서 이에 대해 '행정실에 문의해본 결과 그러한 사실이 있음을 뒤늦게 확인받았다'고만 언급했다. '뒤늦은 확인'을 한 시점은 언제라는 말일까? 그렇다면 확인 이후에는 왜 전달받은 대로 빠르게 알리지 않았나?

결과적으로 열린문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빠져있는 대체 서류(2017학년도 인증 서류)를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내 동아리 인준은 취소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올해 동아리방을 관리 감독하는 단과대 행정실의 구성원이 바뀌며 사회대 학생이 아닌 이들에게 공간을 주지 않기로 정책이 변경되었다는 거다.

때문에 '회원 20인 이상의 서명을 받을 수 없다고 운영위에서 인정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동아리 등록 세칙 예외 조항은 이번 해에 적용할 수 없었고, 열린문이 낸 서류(2017학년도 인증 서류)로는 동아리 구성원이 사회대 학생임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즉 자신들은 학교 측의 정책 변화에 따랐을 뿐 특정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판의 여지는 남는다. 이유가 무엇이고 요구한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성소수자 개인의 신상이 담긴 명단을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부당한 일이다. 아웃팅 위험을 없애면서도, 사회대학 학생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양식을 제시하는 건 어려웠을까. 만일 학생이 특히나 학교 측에 의해 이런 일을 겪는다면, 그 결과 활동에 제약과 차별을 받는다면 가장 먼저 나서야 하는 집단이 어디인가. 바로 자치단위인 학생회가 아닌가.

하지만 두 주체의 입장문을 살펴봤을 때 사과대 학생회는 처음 이런 지침을 전달받았을 당시 항의를 하거나 중재를 이끌고 대안을 모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과대 학생회 측은 입장문를 통해 이에 대해 "의사소통이 부족하여 벌어진 사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학생회가 행정실의 전파사항을 고의로 가로채어 자의적으로 왜곡 통보하였다'는 일련의 비판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학생회가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

대학 공동체는 결코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학생들의 성별, 연령, 장애 유무, 출신 지역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구성원의 다양성을 파악하고 그들의 위치와 상황에 걸맞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자치 단위 대표가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사과대 학생회는 이런 부분에 있어 무능했다.

가령 지금의 사태가 공론화된 이후 사과대 학생회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벌어진 아웃팅 사건만 봐도 그렇다. 동아리 인준 결과가 발표된 이후 해당 게시물에는 사과대 학생회와 열린문을 비판하는 댓글이 나란히 달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열린문 회원 개인의 사진과 SNS 정보가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열린문 회원들이 트위터에 울분을 토로하는 게시글을 아무런 동의 없이 캡쳐해 댓글에 첨부했고, 그 결과 회원 개인의 사진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페이스북에 공개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과대 학생회는 이에 대해 댓글을 단 사람은 학생회와 무관한 사람이고 이에 경고와 삭제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만 고지했다. 해당 댓글이 그들의 SNS 계정에 몇 시간 동안 방치된 것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SNS계정에 올라간 게시물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들에겐 분명 신속하게 대응했어야할 책임이 있었다.

만약 아웃팅이 성소수자 개인에게 초래할 피해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이들이 늦게 대응하고, 사건 경과를 애매하게 고지했을까. 더 나아가 애초에 성소수자들에게 활동과 공간 사용을 전제로 신상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다면 동아리 인준 절차를 그렇게 진행했을까.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사과와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 그리고 잘못된 결정을 다시 되돌리는 일이 당연히 이어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과대 학생회는 자신들의 해명문을 '우리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는 '열린문'을 포함한 모든 성소수자 여러분들께 이번 소요에 대해 책임 단체로서 송구의 말씀을 드리며'라는 말로 닫았다. 왜 '소요'라는 단어를 썼는지 의문이다. 부당한 행동에 대한 거센 비판을 단지 시끄러운 소란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부당한 행동에 대한 거센 비판을 단지 시끄러운 소란인 것일까. 더불어 '무분별한 비방과 비난은 삼가해달라'는 말도 뒤를 이었다. 성소수자 학생들의 분노가 '분별 없는 공격'이라고 여긴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공동체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길 기대한 것일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지금이라도 실수를 시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