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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2016년 09월호 - 동국대학교 큗 편

누가 여성인가?

동국대 큗 회장 심기용

 

요즘 두 가지 사이에서 충돌을 느낀다. 한 가지는 페미니즘, 그리고 한 가지는 퀴어 이론. 사실 성평등을 지향하는 두 이름은 전혀 충돌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예민하고 첨예한 어떤 갈등 지점이 존재한다. 이론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론보다도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부터 나타나는 갈등이다. 아주 최근에도 이 문제로 공동체적 갈등을 겪는 그룹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아주 사소할 수 있는 부분에서, 우리의 관습과 문화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그 갈등을 질문으로 만들어 보자면 바로, “누가 여성인가?”일 것이다.

1세대 페미니즘에게 여성이란 지정성별, 또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의미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2등 시민 정도로 차별받던 여성들은 여성의 시민권을 증진시키는 운동을 각종 방법을 통해 일으켰다. 지성성별 여성인 당사자들이 응집하여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었고 많은 희생과 투쟁 끝에 많은 국가에서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적어도 과거보다는 확장된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고등교육을 통해서, 또는 지금 대학가에서 배우는 것 또한 이 정도의 페미니즘 운동 또는 여성 운동이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에서 여성이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기 위해 싸워온 것 말이다.

2세대 페미니즘에 들어서면서도 시민권 확보를 위한 운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2세대에서는 권리 운동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가부장적인 구조를 유지하는 차별적 성역할이나 성 고정관념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면서 인식과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된다. 1세대 페미니즘이 생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시민권 확보 운동이었다면, 2세대 페미니즘은 성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으로 근거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하는 것, 여성스러운 것, 또는 여성다운 것은 없다는 것이 2세대 페미니즘이 가장 얘기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주디스 버틀러에 이르러 3세대 페미니즘은 생물 성과 사회적 성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나아가 모든 성에 관한 범주가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 여성이라는 범주 역시 구성적인 것이지 지정성별 여성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3세대 페미니즘에 의하면 남성이란 권력적이고 국가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구조를 의미하지 실제 생물 남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 여성의 당사자 운동은 여성 당사자가 확실하게 존재한다는 직관으로부터 시작되어 어쩌면 쉽게 대중성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3세대 페미니즘에서 여성이란 남성적인 구조로부터 억압되거나 배제되는, 또는 남성적인 구조의 대안이 되는 어떤 것으로서 계속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성을 갖지 않는다. 이 때문에 3세대 페미니즘은 허황된 얘기를 하는 부류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소수자 속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트렌스젠더(그 중에서도 비수술 트렌스젠더)만 보더라도 생물 성의 절대성은 금방 와해된다. 우리가 트렌스젠더가 스스로 지향하는 성별으로서 그들을 존중할 것이라면, 태어난 성별이 절대적인 성별정체성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젠더퀴어처럼 스스로 구성해내고 발견해내는 성별을 존중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여성에 대한 지정성별 여성의 독점권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여성이라는 표현은 하나의 지표일 뿐, 직관적인 여자-여성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소수자들과 함께 할 언어로서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이해한다. 버틀러는 오히려 재구성할 수 없는 절대적 범주를 상정하거나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자체야말로 남성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3세대 페미니즘에서 여성은 빈 내용의 표현이 되고, 권력과 게토, 폐쇄적인 구조에 반대되는 자율적인 공동체들이 구성하기 나름인 대안적인 매개체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3세대 페미니즘은 퀴어 이론 그 자체라고도 분류되기도 한다. 생물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구성되고 표현되는 성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재전유와 전위적 운동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세대 페미니즘은 남녀 이분법의 확고한 범주화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인데, 문제는 1~2세대 페미니즘의 입장에선 퀴어의 입장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데 있다. 젠더중립 화장실, 엠티 등등에서의 젠더중립적인 방 구분 자체에도 아직까지 부정적인 입장의 여성운동가들이 꽤 있다. 아직 남녀 이분법에서 나눠진 권력 구조에서의 범죄가 없다고 할 수 없는데 그걸 바로 허물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으로 트렌스젠더나 젠더퀴어를 포함한 퀴어 운동에서는 지정성별 여성을 타겟으로 한 여러 가지 복지 시스템들 중 일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누가 여성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소수적인 사람들을 배제하는 구조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가령 동국대 큗에서는 도리어 여성 성소수자들에게서 총학생회(이 여성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학우 휴게실 등등이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협소한 대상을 상대로 하는 복지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도대체 이 시대의 여성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번 릴레이를 통해서 다 같이 고민해봤으면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퀴어로서, 여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댓글로든, 개인적으로든 같이 생각을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 문제로 릴레이를 계속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도대체, 여성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