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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2016년 02월호 - 한국예술종합학교 편

유령에 관한 막연한 단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소수자 동아리 프리:즘 회원



정돈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 쓰여져 있는 것들은 최근의 생각을 짧은 글로 정리한 것이다. 사실, 근거나 대책은 없는, 막연한 직감에 가깝다.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한 부싯깃으로 쓰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이후 만남 어플, 소셜미디어의 보급 등등 포함), 미국에서의 동성혼 법제화 이후 한국의 여성 동성애자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된다는 느낌이 든다. 본인이 여성 동성애자이다 보니 그 계층의 사회에 한정되는 이야기를 하는 점 우선 양해를 구한다. 여기서 분열이라는 것은 개인 또는 집단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관의 괴리를 뜻한다.

스마트폰은 너무나도 간단히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는 순간에는 나도 마치 동성혼 법제화가 실현되어서 동성간의 연애 따위는 평범한 일이 된 사회에서 사는 것 같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면, 대학교의 교직원이 동성애자 학생을 처벌할 학칙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제1야당의 비대위원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둥, 두뇌가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저열한 차별 발언을 하고, 그런 발언들이 특정 계층에게 지지와 옹호를 받는 사회에 발을 딛고 있다.

이성애중심적 세계에서 동성애자 사회로 도피하는 것이야 예전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피의 방법이 즉자적이 되었다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예컨대 만남 어플리케이션 이전, 또는 소셜미디어 이전 지난날의 동성애자 사회는 이성애자 사회의 시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서 조그만 틈새라도 마련해 물질적으로 실존했다면, 현재 2016년의 동성애자 사회는 이성애자 사회가 점유한 시공간의 차원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보로 구성된 소셜 미디어 속에서 “평행하게” 존재하는 듯하다. 따라서 두 개의 차원의 사회를 합하면 전체 면적은 넓어졌을지 몰라도, 도리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이성애중심주의를 ‘밀어내는’ 동력은 약해진 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든다. 동성애자처럼 행동하기는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입는 의례가 아닌, 스마트 기기를 통한 유체이탈과 이성애중심 사회로의 귀환의 반복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동성애자 사회는 점점 실제 사회에서 작동하는 힘을 갖기보다는 막연한 데이터 (또는 정념)의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실제로 그런 변화가 있는가? 또는 그래서 뭘 어째야 하나? 는 나도 모른다.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고 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