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QUV 활동/대학별 릴레이글

큐브 릴레이 연재 12월호 - 경희대학교 편

너와 같은 , 나와 같은 .

경희대학교 Mainstream 

  • 들어가며.

 파릇파릇 봄의 기운이 올라오고, 새로운 학우들과의 시간을 시작했던 14살의 나는 타인과의 차이만을 생각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인가 꿈틀대어 나온 자발적인 생각이 아닌, 외부의 충격에 의한 타율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 같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연함을 위해선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에게 바치는 심연에서의 글을 모두가 함께할 있기를.


  • 그리고 이야기.

 14 이전의 삶이 별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대인들의 삶과 비스무리한 축에 속하면서 살아왔다. 다만 조금의 차이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2학년 예기치 못하게 발생했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나의 성적 지향성에 대한 숙려와 함께 점차적으로 성적 지향성이 일반이 아닌 이반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이랄까. 이반이란 단어의 은유적 폭력성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했던 나에게 처음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름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예전에 해왔던 개인들만 몇몇 알고 있을 , 이젠 단체로서의 활동은 큐브와 우리 학교 동아리를 제외하고선 거의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과격했다고 해야할까. 좌우지간 그냥 나는 다름에 의해서 비롯된 인권운동을 했다. '다르기 때문에 평등을 향해 나아간다.'라고 하는 생각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색달랐고, 속에서의 문화는 여타 문화와는 차이가 있었다. 부분문화이자 반문화적이라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오래지 않아서 단체활동은 그만두었다. 성격과도 깊게 맞지 않았다고 생각도 했고,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 고입에 대한 전념에 의해서였다고 지금은 회고해본다.

 더욱 강렬했던 기억은 고등학교 정말 친밀했던 선생님께 성적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 어디선가 들었던 친구에 의해서 아웃팅당할 뻔한 기억이었다. 극구 부정으로 인해 물론 잠잠해졌지만, 당시 차이에 대한 고통과 트라우마는 굉장히 컸다. 때문이었는지 성격도 소심해졌고, 게이들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도 접하면서 이런 힘든 마음을 나누길 바랐었다.

 그리고 20, 이전의 기억들을 뒤로한 서울로 왔다.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게이들도 많겠다고 생각하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쓰면서 거의 입학초기에 동아리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때도 아직은 이반(異般) 일반(一般) 차이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냥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차이성에 대한 아집을 떨쳐내게 도와준 것은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이성애자인 몇몇 친구들에게 내가 커밍아웃을 했을 반응 없이 대해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간만에 찾은 성당의 고해성사에서 "사람들의 성질은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선택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생각은 동일했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 동일하며 평등하다는 , 그리고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이반이 ''이고 일반이 ''라고 했을 , 일반과 이반은 차이가 없고 모두 하나의 ()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이가 너와 같은 , 나와 같은 너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평등을 만드는 것이 아닌, 원래 천부적으로 있었던 평등을 가린 인위를 걷어내고 인지하게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권운동의 방향성이 되었다. 

 모든 이는 평등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며, 평등으로 죽는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진정한 현실적인 실현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노력의 일환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무언가를 향하든 부디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너와 같은 나", "나와 같은 "